세력균형 이론 a balance of power 유럽외교사

세력균형론이란.


국가간에 균형을 이루려는 국제정치상 원리 또는 정책의 하나이다. 공통된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국제사회에서 여러 주권국가가 병존하고 각 나라가 저마다 국익을 추구하면서 어떤 국가가 우월적 주도권을 잡는 것을 막음으로써 서로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국가, 나아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하는 것을 말한다.


In international relations, a balance of power exists when there is parity or stability between competing forces. The concept "describes a state of affairs in the international system and explains the behaviour of states in that system" (Fry, Goldstein & Langhorn, 2004).[1] As a term in international law for a 'just equilibrium' between the members of the family of nations, it expresses the doctrine intended to prevent any one nation from becoming sufficiently strong so as to enable it to enforce its will upon the rest.


국제관계에서, 세력균형이란, 경쟁하는 세력들간의 힘의 균형 혹은 안정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국제체제에서의 현상태를 묘사하는 것이고, 이 체제하에서의 국가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법에서, 국가 집단간의 적절한 균형을 의미하는, 세력균형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을 강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해지는 것을 막는다는 대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 세력균형이론은 강대국의 외교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한 지역 혹은 대륙에서 서로 경쟁하는 두개의 세력이 충돌 중인 상황에서, 양국 혹은 양세력의 적대적인 공존에서, 제3자인 강대국이 이같은 불안정한 질서 혹은 균형상태에서 이익을 본다면, 제3자는 두세력간의 충돌을 막고, 지역에서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세력균형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가령, 전간기 영국 외교정책은 세력균형 이론의 산물이었다. 당시 영국의 유럽정책은 독일이 지나치게 약해지는 것을 막고,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대륙에서 세력균형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적 목표하에서, 로이드 조지 이후, 네빌 체임벌린에 이르기까지 대독 <유화정책>을 추진해 갔던 것이다. 

영국의 유화정책은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임명되면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 이미 베르사유 체제가 목표로 한, 독일에 대한 징벌적 처벌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영국 입장에서는 베르사유 체제를 대체하는, 영국,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화해와 협력에 의거한, 새로운 유럽 평화 체제를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영국이 독일의 오스트리아 및 주데텐란트 합병을 용인한 것은 이것이 베르사유 체제의 수정을 원하는, 독일측의 정당한 요구라고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이 자신의 영토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전제하에서, 영국은 독일에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야심은 베르사유 체제의 수정보완의 수준을 넘어서는, 동방으로의 대독일제국의 재건이었다. 이것은 영국의 양보의 정책적 한계를 넘어서는 야욕에 다름아니었고, 이같은 히틀러의 영토적 야심이 더이상 평화적 방법이 아닌, 전쟁이라는 폭력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 졌을 때, 영국은 독일에 대한 양보를 통해, 유럽대륙에서의 평화를 도모한다는 유화정책을 포기하고, 독일에 대한 군사적 저항전략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같은 히틀러의 동방으로의 대독일제국의 확장은 영국의 세력균형전략에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독일과 프랑스간의 힘의 균형이 아닌, 유럽을 석권할 수도 있는, 지나치게 강한 독일의 출현이었던 것이다. 즉 1939년 3월 15일,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를 강점하고, 이어서 슬로바키아까지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하자, 영국은 이에 정면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이 폴란드의 독립보장을 선언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물론 이것은 영국이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것이지, 그 국경선의 유지를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하게 되었고, 이것이 유럽에서의 제2차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는 점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같은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전간기 영국외교를 보면, 영국정책의 문제는 유화정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륙에서의 프랑스와 독일간의 세력균형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영국의 힘이 충분히 강해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보충 자료>

1.  1939년 세계의 균형?- 1939년 당시, 세계의 균형이 독일에게 불리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http://kk1234ang.egloos.com/2715595

2.  "전간기 영국외교의 치명적 오판은?" - http://kk1234ang.egloos.com/2717934 



덧글

  • 들꽃향기 2011/05/02 11:03 # 답글

    이미 세력균형 외교는 1차대전서부터 파탄을 이룬 것 같기도 합니다. 오히려 극대화된 세력균형이 역으로 그만큼 파급력을 키운 역설적인 사례랄까요. ㄷㄷ
  • 파리13구 2011/05/02 11:05 #

    네, 세력균형 이론의 전제가 충돌 당사국보다,이들의 충돌을 막는 제3자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해야한다는 것인데,

    전간기 영국이 이같은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어렵다잉 2011/10/22 17:27 # 삭제 답글

    세력균형에 대한 이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게 있는데요! 이 바로위의 댓글에서 "세력균형 이론의 전제는 충돌 당사자보다, 이들의 충돌을 막는 제3자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해야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위의 글에서는 세력균형은 "공통된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국제사회에서 여러 주권국가가 병존하고 각 나라가 저마다 국익을 추구하면서 어떤 국가가 우월적 주도권을 잡는 것을 막음으로써..."라고 되어있습니다.
    충돌 당사자를 저지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의 제3자라는 것이 공통된 권력 국가,우월적 주도권을 가진 국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명좀 부탁드려요 ㅠ_ㅠ
  • 파리13구 2011/10/22 17:45 #

    가령, 영국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대륙에서 독일 혹은 프랑스가 패권을 장악하는 것을 막는 것이 세력균형이고, 이를 위해서는 영국의 힘이 전제조건이 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