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삼국협상 유럽외교사



[외교사]

[제1차 세계대전]


삼국협상

출처- 불어 위키페디아

삼국협상은 프랑스,영국 그리고 제정 러시아간의 군사동맹이며, 이는 삼국동맹에 맞서기 위한 것이다.[삼국동맹-1882년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가 프랑스를 고립시킬 목적으로 맺은 군사동맹] 삼국협상은 3개국들간의 여러 조약들이 결합된 것이다.


우선, 1892년 8월 17일, 프랑스와 러시아간의 군사협정이 체결되었고, 이것이 1893년 12월 27일, 노불동맹으로 발전했다. 몇년 후인, 1904년 4월 8일, 프랑스와 영국이 영불협상을 조인했고, 이 합의는 파쇼다 사건 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영불이 식민지 관련, 각자의 영향권을 정한 것이었고, 이것은 양국간의 외교적 화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05년 7월의 독일의 카이저,빌헬름2세 와 러시아 차르,니콜라이2세의 회담이후, 영국은 독일과 러시아의 접근에 대해, 특별한 근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은 따라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고립> 정책을 청산하고, 러시아와의 갈등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이것이 1907년 8월 31일, 영러 협정이라는 합의로 귀결되었고, 이를 통해, 양강대국은 아프가니스탄,페르시아 그리고 티벳에서의 각국의 영향권의 범위를 정하게 되었다.


이같은 영러접근을 동맹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노불동맹과 영불협상과 함께, 이 영러합의가 바로 삼국동맹에 대항하는, 삼국협상의 초석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삼국협상은 일차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발칸반도에서 도발한 일련의 위기들과, 이차적으로, 독일이 해외에서 도발한 아가디르 사건(1911년 7월 1일,독일이 모로코의 아가디르항에 군함을 파견하여 프랑스를 위협한 사건)등으로 인해 촉발된 위기들 덕분에, 공고해지게 되었고, 이같은 동맹질서가 제1차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다.




덧글

  • 에드워디안 2011/05/02 09:26 # 답글

    비외르쾨 회담에 앞서 이미 보어전쟁의 휴유증과 영일동맹의 체결을 계기로, '영광스러운 고립'은 청산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파리13구 2011/05/02 09:43 #

    대영제국 몰락의 역사에서, 영광스러운 고립 정책 청산은 중요한 국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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