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미테랑 집권 30주년..." La culture francaise


이번달 프랑스 월간 <역사>를 보니, 다음과 같은,

프랑수아 미테랑 집권 30주년 기념 기사가 실렸다.

1981년 5월 10일 - 왜 미테랑이 승리했을까?


사진 설명 - 1981년 5월 21일 파리 팡테옹의 프랑수아 미테랑. 그의 취임일에 신임 대통령은 팡테옹이라는 공화국의 신전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기 원했다 : 홀로 그는 프랑스 노예제 폐지의 주역 빅토로 쇨세르 Victor Schœlcher, 프랑스 사회주의의 아버지 장 조레스 그리고 프랑스의 좌우합작 레지스탕스를 조직한 영웅 장 물렝의 무덤에, 각각 장미 한송이를 바쳤다.


1981년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당시 대통령인 지스카르 데스탱과 좌파의 단일후보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결했다. 미테랑은 51,82%의 득표로 승리했다. 흥미로운 것은 1차투표에서 탈락한, 오늘날 프랑스 우파의 중심적 지도자 자크 시라크가 누구를 지지했는가 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자크 시라크가 같은 우파인 지스카르 데스탱이 아니라, 좌파인 프랑수아 미테랑을 지지했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등 우파가 되기 보다는, 제1야당 지도자가 되는 편이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역시나 정치동물 시라크 다운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생각된다.

미테랑의 집권은 프랑스 제5공화국하의 최초의 정권교체이자, 좌파의 집권이었다. 당시 유럽의 각지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한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는 좌파가 집권했던 것이다. 이는 한편에서는 기쁨의 고조, 열정적인 환상을, 다른 한편에서는 묵시록적인 시각, 집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자아낸 바 있다. 1981년 5월, 프랑수아 미테랑이라는 사회주의자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야기한 감정들의 고양을 잊어서는 안된다.


프랑스 차기 대선이 1년앞으로 다가온 지금, 프랑스 좌파의 재집권 가능성이 다른 어느 때보다 높다. 만약 사회당 후보가 1차투표에서 탈락하지 않고, 결선투표에서 사르코지 혹은 마린 르펜을 만나게 된다면, 만년의 미테랑의 꿈이었던, 자신의 후임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 현실이 될 것이다. 




덧글

  • 허안 2011/04/29 10:39 # 답글

    사회주의 정권 들어섰다고 프랑스와 국교를 끊어야 한다고 g剌하던 놈들이 생각나는군요.
  • 파리13구 2011/04/29 10:42 #

    ^ ^

    당시 한국정부의 관심사는 미테랑의 프랑스가 북한과 자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9 12:12 # 답글

    좌우파의 이념 문제를 떠나 퐁피두와 더불어 골리즘의 가장 충실한 후계자이기도 했죠.ㅋ

    내공면에서 사르코지는 미테랑의 발끝에도 못따라간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할 뿐이지...
  • 파리13구 2011/04/29 12:36 #

    동감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9 12:13 # 답글

    ps. 미테랑 이후의 프랑스는 국제적 위상면에서 예전만 못한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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