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드골,루스벨트- 1940년 6월의 드라마... 유럽외교사

<위 사진은 1940년 6월의 드라마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 ^> 

아래는 교육방송이 방영했던, 2차 세계대전사 63, 그들만의 전쟁, 처칠,드골을 만나다 중 관련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다큐에 따르면, 2차세계대전의 중심과 그 막후에서, 처칠,드골 그리고 루스벨트가 만들어간 드라마가 시작된 것은, 미국 루스벨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1940 6 10

 

"비수를 들고 있던 손이 마침내 이웃의 등을 찔렀다. 우리는 이 나라의 물적 자원을 동원, 적의 세력에 타격을 가할 것입니다."

 

- 루스벨트

 

-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가 같은 날에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선전포고하자 이에 분노해서 한 발언이다.

 

 

1940 6 11

 

우리 모두는 어제 저녁의 각하의 연설을 듣고, 그 당당함에 마음이 든든해 졌습니다. 프랑스가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

 

-윈스턴 처칠

 

11, 처칠은 프랑스의 정부가 있는 투르를 방문한다.

 

처칠은 프랑스 정부 지도자들의 패배주의에 경악한다. 특히 필리프 페탱 그리고 막심 베강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였고, 프랑스의 항복은 단지 시간문제인 것으로 간주하는 듯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프랑스 총리 폴 레노만은 계속 저항하기를 원했다.

 

1940 6 12

 

런던으로 돌아온 처칠은 루스벨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문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드골의 이름을 언급하게 된다. : "폴 레노 총리는 전쟁을 계속하자는 의견이며, 이 중에는 드골이라 불리는 야심찬 젊은 장교도 있습니다. 각하께서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프랑스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지금이 바로 적기 입니다.

 

1940 6 13

 

루스벨트는 폴 레노에게 그를 지지한다는 답장을 보냈다 : "미국 정부는 동맹국들이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물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힘이 허락하는 모든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군의 장엄한 저항은 미국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같은 날 처칠은 다시한번 프랑스로 갔다. 이날 드골을 만난 처칠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게 된다 : "나는 강인하고 무표정하게 서있는 드골을 보았다. 그와 인사를 나누며 나는 불어로 속삭였다. L'homme de destin! [롬드 데스탱- 운명의 인간! - 이같은 처칠의 기록에 대해, 드골은 그런 적이 없다고 이를 심드렁하게 부인한 바 있다. ㅋㅋ]

 

그날 프랑스가 전열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위기에 사로잡힌 처칠은 루스벨트에게 미국의 중립포기 및 참전이라는 분위기의 발언을 촉구하게 된다 : "대통령 각하! 나는 이 논평이 내일인 6 14일에 반드시 공표되어, 세계사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940 6 14

 

루스벨트는 폴 레노에게 다음과 같이 답장했다 : "본인의 메세지는 동맹국을 지지하여, 미국정부가 군사적 개입을 한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본인의 메세지를 공표해 달라는 귀하의 요구에 응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루스벨트의 이같은 답장은 처칠과 폴 레노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 프랑스 총리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1940 6 16

 

이에 다급해진 프랑스의 폴 레노 ,샤를 드골 같은 항전파는 프랑스 단독의 독일에 대한 항복을 막기위한 최후의 카드를 꺼낸다. 그것은 바로 영국과 프랑스의 합병이었다. 이를 위해 드골이 런던으로 날아갔고, 이에 대한 영국정부의 동의를 얻어냈다. 하지만,"영국과의 합병은 송장과의 융합에 다름없다!" 고 주장하는 필립 페탱을 중심으로 한 항복파의 프랑스 정부가 이를 거부했고, 영국 프랑스 합병론은 무위로 돌아갔고, 폴 레노 총리의 항전계속 의지도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프랑스의 폴 레노 총리가 사임하고, 페탱 원수가 그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오른다.

 

1940 6 17

 

12 30, 페탱은 정부대표로 그의 첫번째 라디오 연설, "전투를 끝내지 않으면 안된다!"를 하게 된다.

 

1940 6 18

 

당시 영국 런던에 있던 샤를 드골은 전날 페탱의 프랑스패배 공식화 선언에 맞서, 유명한 6 18일의 호소문을 발표,

전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는 이후 <6 18일의 인간>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1940 6 22일의 독일-프랑스 평화협정

 

이렇게,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탈하고, 영국 홀로 독일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처칠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샤를 드골을 정치적으로 인정했다가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여러번 후회하는 정도를 넘어, 드골에 대해 분노하게 되고, 영악한 루스벨트는 드골을 시종일관 무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게 되며, 이 같은 영미의 앵글로색슨 지도자들에 대한 환멸을 느낀 드골은 자주, 처칠과 루스벨트 사이의 분열을 조장하는 입장을 가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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