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소련-폴란드 전쟁, 1920년 유럽외교사

소련-폴란드 전쟁 (1919년 2월-1921년 3월) 은 제1차세계대전의 결과물들 중의 하나다. 소비에트 러시아와 폴란드 제2공화국간의 국경선이 베르사유 협정에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이 무력 갈등은 2가지 목적을 가지는 것이었다 : 정치적으로, 소비에트 러시아는 폴란드 공산화를 통해, 소비에트 헝가리와 독일 공산주의자들과의 연결을 추구했고, 영토적으로, 폴란드는 18세기말의 폴란드 분할 당시 상실한 영토의 수복을 원하고 있었다면, 소련은 1914년의 제정 러시아 영토 수복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 결과에 대해, 양국 모두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1921년의 리가조약에 따라,그 결과로 소련의 목표보다는 폴란드의 이해에 부합된 것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소련-폴란드전쟁 동안, 영국 외무부장관 커즌이 소련 정부에 대한 각서를 통해, 폴란드의 동방국경에 기초한 국경을 제안했고,이를‘커즌 라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전세(戰勢)가 역전되어 소련군이 패배하자 폴란드는 ‘커즌 라인’ 동쪽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백(白)러시아 등을 영유하게 되었다(1921년 리가조약).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은 다시 이 지역을 병합하고(1943년 9월) 얄타회담과 소련-폴란드국경조약(1945년 8월 16일)에 따라 이 국경선을 폴란드의 동부 국경으로 한다고 최종 확인하였다. 또한, 이 때에 폴란드는 그 대상(代償)으로 서부와 북부에서 오데르-나이세선(線) 동쪽을 획득하게 되었다. 현재의 폴란드-러시아 국경선은 당초의 커즌 라인과 거의 일치한다. 




덧글

  • 천마 2011/04/20 13:11 # 삭제 답글

    폴란드와 소련의 전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죠. 저도 최근에 역사 블로거들의 글을 통해 알고 관련자료를 찾아봐서 안 것입니다.

    독립한지 얼마안된 폴란드가 고토회복을 꿈꾸며 적백내전으로 혼란한 상태인 소련을 쳐들어간건데 정작 자신들이 침공해놓고는 소련의 반격에 밀려 수도 바르샤뱌근처까지 밀렸다가 극적으로 역전에 성공(비스툴라강의 기적)해서 민스크까지 진격해 국제연맹의 중재로 서부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얻은 싸움이죠. (아마 이때 소련이 원한을 단단히 품었을겁니다.)

    결국 20년도 못가서 이때 얻은 영토를 잃었지만 후원자인 영국덕분에 동프로이센 영토를 얻었으니 별로 손해본건 아닌 셈입니다만 참 기구하다 싶습니다.

    독립해서 고토회복한다고 힘 한번 썼다가 원한을 크게 사서 처절하게 당하고 그 상대가 자신들의 후원세력과 손잡는통에 당한 일에 하소연 한번 제대로 못하고 눌려 살아야 했으니 이 사람들도 한의 정서가 상당할 듯 합니다.

    뭐, 소련입장에서야 혁명으로 갓 수립한 정권이 내전으로 위태로운데다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등이 독립한다고 난리인 판에 뒤통수치고 들어와서 영토까지 빼았겼으니 이가 박박 갈리는 상대였겠지만 그래도 좀 심했죠.
  • 파리13구 2011/04/20 13:18 #

    특히, 바로 이 전쟁 결과에 따라, 스탈린이 자신의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스탈린이 폴란드에 대해 원한을 품었다고 하고, 그 결과가 제2차세대전에서 폴란드가 맞이한 운명이었다고 봅니다.
  • 들꽃향기 2011/04/20 13:50 # 답글

    사실 개인적으로 '약소국 폴란드' 혹은 '약자의 민족주의'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재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소-폴 전쟁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 파리13구 2011/04/20 13:56 #

    폴란드의 비극은 기본적으로 지정학적 비극이었다고 봅니다.

    특히, 서로는 독일, 동으로는 소련이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와의 동맹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허망했는지는 이후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폴란드가 생존을 도모하려 했다면, 독일과 소련을 동시에 적으로 두지 않는 것을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야 마땅했지만,

    기고만장한 폴란드는 허장성세 하다가 양국에 의한 분할점령이라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 천마 2011/04/20 14:58 # 삭제

    폴란드 입장에서 그러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단치히회랑에서 알 수 있듯 전승국들이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독립시켜준 거라 독일과의 우호관계는 어려웠습니다.

    소련은 내전중이라 혼란스러운 상태인데다 볼세비키정권은 반서방인 입장이고 백러시아군은 뚜렷한 주도 세력이 없었으니 역시 우호관계 맺기가 힘들죠.

    게다가 독립한지 얼마 안된 입장에서 국민통합과 고토회복을 통한 영토확장이라는 기회가 보이고 후원자인 영국과 프랑스도 지지와 지원을 보내주는 상황이니 제가 당시 폴란드 지도자였다고 해도 소련으로 안쳐들어가는게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폴란드역시 나중에는 독-폴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양쪽에 동시에 적을 두는 것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양쪽 모두에게 원한을 산 입장이라....
  • 파리13구 2011/04/20 15:07 #

    천마님 /

    네,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 당시 폴란드가 어쩔수 없는, 외통수 혹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있었다는 점에 동감합니다.
  • 만슈타인 2011/04/20 14:27 # 답글

    결국 독일은 잘못된 지도자 때문에 영토만 GG
  • 파리13구 2011/04/20 14:28 #

    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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