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 유럽외교사



니얼 퍼거슨의 지적에 따르면,

<역사란 무엇인가>의 카는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지지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섬세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카의 시각에서 보면, 국제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도덕이 아니라, 권력이었다. 열강간의 힘의 역관계가 변화할 때, 제기되는 문제란, 국가간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는지 혹은 폭력적으로 해결되는지의 여부이고, 이 영국역사가는 전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따라서, 유화정책은 과거 영국정치체제가 혁명을 회피하고, 노동계급이 가진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고 적응하는데 성공했던 것처럼, 최소한의 희생으로 독일 문제를 평화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유화정책에 대한 카의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카는 유화정책이 <평화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 보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9세기 후반 과 20세기 초반, 각국의 노동계급은 일련의 파업과 협상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꾸준히 향상시켜 나갔다. 그리고 정의감이든, 혹은 혁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가진자들>은 그 문제에 대해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양보했다. 결국 양측은 이 과정을 통해 분쟁을 다양한 형태의 화해와 조정을 통해 해소하려고 마음먹었고, <평화로운 변화>라는 체계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평화로운 협상을 통해 불만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점차적으로 <평화로운 변화>를 정착시키는 절차가 수립되었고,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의 신뢰를 얻게 되었다. 이같은 체계가 인정을 받게되자, 조정은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졌고, 폭력을 통한 위협은 공식적으로 결코 포기된 적은 없지만, 점차 잊혀지게 되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독재자에 대한 양보 혹은 굴복이 합리화되었다는 것이다. 

니얼 퍼거슨에 따르면, 심지어 카는 히틀러의 정책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베르사유 체제는 시대착오적이고, 독일은 동쪽으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할 권리가 있다고 보았다고 한다. 1938년, 카는 뮌헨회담을 <평화적인 변화를 협상하는 모델"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덧글

  • 천마 2011/03/31 16:09 # 삭제 답글

    기본적인 생각자체는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상대가 그 평화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했을때 이를 견제할 수단이 있느냐는 건데 2차대전 당시의 영국이나 프랑스는 (1차대전의 기억과 대공황 때문에) 그럴 수단 이나 의지가 부족했죠.
  • 파리13구 2011/04/01 08:57 #

    네, 어쩔 수 없었던 상황도 존재했습니다.
  • 크핫군 2011/04/01 00:14 # 답글

    저래뵈도 베르사유 거울방에 있던 분이셨으니까요.

    그러니까 ㅋㄲㅉㅁ
  • 누군가의친구 2011/04/01 00:43 # 답글

    문제는 그 상대가 전혀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죠.ㄱ-
  • 파리13구 2011/04/01 08:58 #

    그렇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4/01 17:22 # 삭제 답글

    퍼거슨이 쓴 이 내용은 <증오의 세기>에 있는 것입니까?
  • 파리13구 2011/04/02 08:56 #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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