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공화국 정당민주주의의 한계는? 유럽외교사

노이만 Sigmund Neumann의 지적에 따르면,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 정당들은 서로 소통하기 보다는 대결했다고 한다.

각 정당은 다른 정당에 대한 정치적 적의를 드러냈고, 정치적 대화 와 연립정부의 형성은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 "그것은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각자의 입장을 결정했기 때문에, 그 결과, 자유주의 와 의회민주주의의 지적 기초는 흔들리고 있었다." 노이만은 "의회의 붕괴가 필연적으로 다른 정치권력,즉 제국 대통령이나 제국 정부의 부상으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노이만의 동료, 모리츠 본에 따르면,

의회의 마비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해줄, 독재자,

그리고 경제 집단은 물론, 심지어는 다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재자를 요구하는 요란한 군중의 외침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결국, 바이마르 의회민주주의는 국가를 통합시켜야 했지만, 반대로 국가를 분열시켰고,

이같은 의회체제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극복대안으로 출현한 것이 바로 반의회 민주주의적 나치체제 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덧글

  • 에드워디안 2011/03/21 17:27 # 답글

    바이마르 공화국 자체가 1차대전 패전의 치욕적 산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 파리13구 2011/03/21 17:32 #

    네, 1차대전 전후 유럽의 국제정치 문제는,

    독일이 패전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1/03/21 17:44 #

    패전 직전까지도 대다수 독일 여론이 동부전선에서의 승리에 고무된 나머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실정이었고, 여기에 군부의 흑색선전('등 뒤의 칼'이론)까지 가세한 만큼, 더욱더 베르사이유 체제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죠.
  • 파리13구 2011/03/21 18:28 #

    네, 문제였습니다. 패전국이 패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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