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여름, 극동의 일본에 대한 처칠의 입장은? 유럽외교사

1941년 여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주된 고민은 극동문제 였다고 한다. 즉 당시 극동에서, 대영제국에 대한 일본의 위협이 고조 중이었던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와 일전에 돌입해서, 당분간 영국에게 심각한 직접적 위협을 가할 수 없었고, 또한 북아프리카 주둔 영국 지상군이 이곳에서 추축군 군대에서 맞서 이길 수도 있다고 희망했던 처칠에게, 만약 일본이 공격해 온다면, 전략전 균형이 다시한번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외무성의 캐도건은 그해 7월의 처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하고 있다 : « 처칠 총리는 일본만을 두려워하고 있다. »


처칠은 다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 만약 도쿄가 대영제국에 대한 적대행위에 돌입하게 된다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장관들 과 장군들은 이에 대해서 덜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의 영국에게 다음과 같은 상황은 <악몽>이 될 것이었다 : 영국이 극동에서 일본과 전쟁상태에 돌입했음에도, 미국이 중립을 유지하는 것! 몇몇 전문가들은, 일본이 극동에서 영국을 공격하기 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공격에 가담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앤서니 이든 영국 외무부 장관이 이상의 상황들이 발생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처칠에게 묻자,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 미국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절대로 영국이 먼저 일본에 도발해서는 안된다! , 루스벨트의 조국이 이 지역에 발을 담그지 않는 이상, 극동에서의 영국의 전쟁행위는 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방침이었던 것이다.




덧글

  • 천마 2011/03/16 16:53 # 삭제 답글

    일본은 당시 세계3위의 해군력을 가진 국가였는데다 영국은 독일을 상대하느라 전력을 다하고 있었으니 두려움을 가질 만 했습니다.

    일본도 독일과의 전쟁으로 유럽국가들이 아시아식민지를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이 행동은 미국을 자극해서 결국 태평양전쟁까지 갔으니 처칠의 예상이 맞은 셈입니다.

    사실 워싱턴 해군조약이나 런던 군축조약, 중일전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등을 생각하면 일본이 영국이나 러시아를 공격했을때 미국이 계속 중립을 고수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고 봅니다.
  • 파리13구 2011/03/16 17:03 #

    네, 지적에 동의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3/16 19:31 # 답글

    두가지 경우밖에 없었겠죠.

    -일본이 소련을 공격함으로써 동남아시아 주둔 영국군을 공격하지 않아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일본이 동남아시아의 유럽 식민지들을 공격함에 따라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영국의 부담을 줄여줄 것이다.

    어떤 걸 일본이 어떤 선택지를 꺼내들든간, 영국으로써는 유럽에만 집중해도 되긴 하겠습니다. 물론 후자의 경우 좀 더 신경쓰이겠지만 미국을 전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일종의 보너스(?)가 있으니 말입니다.
  • 00 2011/03/16 21:42 # 삭제 답글

    병신같네 영국;;

    어차피 극점은 지난 국운, 몰락해가도 건들놈 다 먼저 후리면서 패기있게 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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