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은 언제 대 소련 타협론자로 전향했을까? 유럽외교사



적어도 1917년부터 1938년까지 ,영국에서 윈스턴 처칠만큼 소련과 볼셰비즘을 증오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처칠은 총리로 취임하기 몇년전부터, 그의 소련관을 수정, 러시아인과의 협상할 수 있다는 <놀라운> 입장변화를 보여준다.
즉 뮌헨협정 직후인, 1938년 10월, 그는 체임벌린 총리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와의 동맹을 주장했고, 폴란드인들에게 스탈린과의 화해를 권고했다. 이같은 입장변화는 보수당내에서의 그의 명성을 실추시켰지만, 반대로 노동당 하원들 사이에서의 명성을 높였고, 이는 이후 그가 전시 연립정부의 총리가 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1939년 9월, 처칠은 체임벌린 총리에게 소련의 폴란드 동부로의 진격을 <우호적 진출>로 해석하라고 건의했다 : "이같은 진격은 우리 영국의 이해를 전혀 침해하지 않는 것이고, 동부와 남동부 유럽으로의 독일의 진격을 견제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처칠이 보았던 것이다.

당시 방송에 출연한 처칠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러시아 군이 폴란드에 주둔 중인 것은 나치의 위협에 맞서, 러시아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매우 필요한 조치인 것이다." 1940년 1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한 <겨울전쟁> 때에도, 그는 핀란드의 대의를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가 잠시동안 코카서스의 바쿠의 소련 유전에 대한 폭격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독일로의 소련 원유 수송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이 작전을 포기했고, 처칠은 러시아인들이 히틀러의 패배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전제하에서,러시아인들과 뜻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결국, 1940년 프랑스가 패배하기 전부터, 윈스턴 처칠은 러시아인과 손을 잡지 않는다면, 영국의 승리가 가능하지 않을 것임을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덧글

  • 행인1 2011/03/14 22:03 # 답글

    나치를 적으로 두는게 불가피하니 소련과 친교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물론 처칠을 뺀 나머지는 그 반대로 생각했을지도...
  • 파리13구 2011/03/15 08:26 #

    네, 그 반대였다고 봅니다.^^
  • shift 2011/03/15 15:17 # 답글

    근데 솔직히 도찐개찐일듯 그나마 소련은 좀 멀다? 덕국을 샌드위치 시킬수 있다?
  • .. 2016/01/17 03:07 # 삭제 답글

    근데 히틀러는 영국을 좋아했죠 영국에게 평화를 제의했지만
    거절한게 처칠이고 결국 영국은 2차대전뒤 미국의 채무자로 전락했죠 또한 독일은 붕괴되어 분단되고 동유럽은 소련의 지배로 넘어가고 폴란드도 공산화되었죠 80만 영국 청년의 목숨이 독일과학자 몇명을 위해 휘생되었습니다 제가 봤을 땐 차라리 독일과 협상하고
    소련을 침공하게 놔두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히틀러도 영국땅보다 소련땅을 지배하고 싶어했으니...우크라이나의
    밀밭과 러시아의 평원 카프카스 유전이 더 탐났겠죠
  • .. 2016/01/17 03:09 # 삭제 답글

    처칠은 동유럽이 공산화되고 독일이 무너진 뒤 1년뒤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엉뚱한 돼지를 죽였어'라고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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