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덩케르크 전투 당시, 포위된 영국군 중에는... Le monde



1940년 5월 25일 무렵, 최소 25만명 이상의 영국군이 독일군에 묶여 있었다.

이들 중에, 다음과 같은 장차 영국군의 핵심 인물들이 될 두뇌집단들이 있었다고 한다.


후일 튀니지에서 제1군 사령관이 된 앤더슨 Anderson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 제2군 사령관 뎀프시 Dempsey, 제8군 사령관 리치 Richie

미얀마 및 남동아시아 전구 총사령관 스톱포드 Stopford

종전 시, 지중해 전구 참모장 월리엄 모건 William Morgan, 보토군 총사령관 프랭클린 Franklyn 

북아프리카 사막을 횡단, 제8군으로 하여굼 3,200 km의 진격을 가능하게 만든 병참총감 린젤 Linsell

영국이 <오버로드>에 참가할 연합군의 각국 부대들을 훈련시킬 당시 군무총감 애덤 Adam

훗날 아프리카에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을 무찌르게 될 , 당시 영국해외원정군 제1군단 제1사단장 해롤드 알렉산더 Harold Alexander

그 활약을 설명할 필요도 없는, 버나드 몽고메리 Bernard Montgomery 는 당시 제2군단 제3사단장이었고, 

마지막으로...

몽고메리를 부하 장군으로 두고, 영국해외원정군 제2군단을 지휘한 <앨런 브룩 Alan Brooke >이 있었다.   


- 만약, 이들이 덩케르크 전투에서 독일의 포로가 되었다면, 제2차세계대전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참고 - 아서 브라이언트, <워 다이어리> ...


덧글

  • ArchDuke 2011/03/05 11:11 # 답글

    누군가 대신했겠죠(...)
    히틀러가 1차대전에서 사망했다면 가설이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 파리13구 2011/03/05 11:23 #

    네,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 구멍난위장 2011/03/05 13:10 # 답글

    대신은 했겠지만 저정도의 인원을 날려먹으면 보충하는데 피눈물났을테니
    그나마 다행이죠.
  • 파리13구 2011/03/05 13:15 #

    특히 앨런 브룩의 공백이 있었다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보다 더 이르게 시작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 Real 2011/03/05 15:56 # 답글

    영국육군 자체가 완전하게 붕괴되는거죠. 당시 저 25만명이 영국육군의 현역 A급 부대들만 집중배치된 최정예부대들이었고 당시 됭케르크지역쪽의 프랑스 육군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이 문제 관련해선 =전격전의 전설=에서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영국자체가 처칠정부만 대영투쟁심이 강했을뿐 처칠정부가 과연 얼마나 그 의지를 불태우며 사는가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동시에 독일은 굳이 북아프리카등으로 전선을 확대할 이유도 없으며 런던대공습등도 할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나옵니다. 당연히 북아프리카와 영국대공습등에서 실제 소모된 독일군 자원들이 동부전역으로 집중투입되었을 것이라는것이 예측이자 동시에 서유럽지역에서의 독일의 막대한 군수생산라인가동이 가능했다라고 이야기 나오더군요.
  • Real 2011/03/05 15:57 #

    저때 만약 히틀러가 정지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룬테슈테트가 괜한 뻘생각을 안해서 문제가 안났다면.. 2차대전의 서부전역은 1940년이후 생성되지 않았을겁니다. 미국이 영국의 군비를 위해서 투자할 이유도 없었을것이고요.
  • 파리13구 2011/03/05 16:19 #

    네, 처칠 및 전시내각이 붕괴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핼리팩스 경이 총리가 될 수도 있었겠죠....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