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공방전의 의미는? Le monde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공방전은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소련군이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점령을 위한 공세에 나선 사건을 의미한다. 포위가 개시되었을 때, 수도 방위는 헝가리군과 독일군이 맡고 있었고, 1944년 12월 29일에 처음으로 소련군과 루마니아군에 의한 포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공방전은 1945년 2월 13일 수비군측이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종결되었다.

비록 이 전투가 스탈린그라드 전투 나 베를린 전투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전투이지만,
소련군이 동유럽으로 진격함에 따라,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전투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소련군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시계를 강탈했고, 헝가리 여성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그녀들을 강간했던 것이다.

특히, 붉은 군대가 이 공방전에서 승리한 이후, 강간은 거의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당시 부다페스트 주재 스위스 대사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헝가리 국민의 최악의 고통은 여성에 대한 강간 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강간은 10세에서 70세까지의 거의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을 상대로 자행되고 있으며, 너무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헝가리에서 매우 소수의 여성들만이 이 화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덧글

  • 만슈타인 2011/03/03 14:01 # 답글

    오죽심했으면 주코프가 강간좀 하지마라고 호소를 할 정도였겠습니까 (...)
  • 천마 2011/03/03 16:52 # 삭제 답글

    소련군의 만행은 정당화되기 어려운 끔찍한 행위였지만 독일군이 자초한 면이 큽니다.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포로들과 민간인들에게 가한 잔학행위는 그들을 해방자로 맞이했던 지역사람들이 저항세력으로 돌아선 것을 봐도 알 수 있죠.

    게다가 대전말기의 소련군은 많은 인명손실로 인해 점령지 수복시에 현지 젊은이들을 징집해 병력을 보충했기때문에 훈련이 부족해서 기초적인 명령만 잘 수행하면 크게 통제하지 않는 상태였던 탓도 있었습니다.

    헝가리는 루마니아처럼 소련과 협상하려했지만 그놈의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때문에 그만 실패해서 편을 바꿀기회를 놓친데다 당시 부다페스트 방어병력의 대부분은 독일군이었으니 소련군에게는 그놈이 그놈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독일군은 자신들에게 별다른 짓을 하지않았던 사람들에게 갖은 만행 다 저질러놓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되자 헝가리까지 같이 끌고 들어간겁니다.

    다만 슬픈것은 일은 군인과 정치가들 (남자들)이 다 저질러놓고 대가는 민간인 (여성)들이 치렀다는 것이죠. 전쟁은 항상 그런가봅니다.
  • 파리13구 2011/03/03 22:00 #

    네,전쟁을 혐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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