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관점에서 본, 처칠,스탈린 그리고 히틀러" Le monde



아서 브라이언트의 <워 다이어리>에 따르면,

영국의 제2차세계대전에서 , 처칠 과 몽고메리 만큼이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앨런 브룩, 영군 육군참모총장이라 한다.


역사가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처칠 옆에서, 대전략을 수립하고, 조용하게 총리를 보좌하고,

처칠의 모험적 군사작전들에 제동을 건, 앨런 브룩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덩케르크 작전을 성공리에 진행한 것도 앨런 브룩이고,

스탈린의 강한 압력하에 있던 유럽에서의 <제2전선>구축도,

프랑스 북부 우선이 아니라,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에서 시작하게 된 것도,

앨런 브룩의 공이라는 것이다.


브라이언트가 지적하는 브룩의 장점은,

그가 '정치적 고려 때문에 군사적 판단을 희생시키는 것을 거부한' 군인이라는 점이다.

모험주의를 선호하는 처칠의 충동적 제안에 맞서, 브룩은

사소한 것은 받아주되 핵심 군사사항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원칙에 입각하여

지혜롭게 대처했고,

파멸로부터 여러번 영국군을 보호했다고 한다. 


군사 리더십의 관점에서, 처칠,스탈린을 히틀러와 비교하자면,

처칠은 앨런 브룩의 ,

스탈린은 특히 스탈린그라드전투의 <천왕성작전> 직후, 주코프 와 바실레프스키 의 견제를 받았고, 이를 수용했다면,

히틀러는 전쟁이 계속됨에 따라, 더욱 군사작전에 더 깊숙이, 더 세심하게 간여했다고 한다. 


몇몇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렇게 처칠과 스탈린이 군사문제에서, 군부의 견제를 받게 되고,

점점 세부적인 군사작전에 간여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바로 연합군의 강점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군사문제에서, 영국과 소련이 지도자의 지나친 리더십을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 혹은 소련방식으로 견제했던 것이

무소불위의 파시즘적 방식의 히틀러의 그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덧글

  • 천마 2011/02/21 15:34 # 삭제 답글

    생각해보니 확실히 독선적인 성향이 강했던 처칠과 스탈린은 둘다 군사적판단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도 비슷했습니다.^^

    처칠의 경우는 참모본부가 그를 잘 견제했고 스탈린은 여러차례의 실수로 인한 참패를 겪으면서 겨우 깨달았다는 점이 두 나라의 정치체제의 차이를 보여주긴 합니다만.
  • 파리13구 2011/02/23 08:41 #

    그렇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1/02/21 20:11 # 삭제 답글

    그러고 보니 처칠이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말아먹었죠? 아마.
  • 파리13구 2011/02/23 08:42 #

    당시 보수당 동료들의 시각에서 볼때,
    처칠이 추진해서 성공한 군사작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었습니다. ^^
  • Cicero 2011/02/22 12:00 # 답글

    전쟁초반에 프랑스가 무너질때, 무리하게 병력을 증파하려했던 처칠을 막은것도 앨런이라죠.
  • 파리13구 2011/02/23 08:42 #

    그렇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