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외교를 겁쟁이로 만든 것은 영국!" Le monde

 



<
전간기 프랑스 외교의 주요 관심사?>


역사가 로버트 영 Robert Young 에 따르면,


전간기 프랑스 외교의 주요관심사는 <장기전><영국>이었다고 한다. 즉 당시 프랑스의 외교 와 군사 전략은 <장기전>개념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선, <장기전>1918년에 끝난 전쟁과 유사한 전쟁을 지칭하는 것이고, 전간기 프랑스 당국자들의 개념의 중심에 있던 개념이었다. 그들은 장래에 발생할 전쟁은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었다. 그들이 20년 동안 확신했던 것은, 독일이 복수를 준비하고 있고, 만약 전쟁이 발생한다면, 프랑스가 독일의 필연적인 적이 될 것이 분명하고, 독일 공격에 의한 첫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외부 원조가 없다면, 전쟁은 일방적인 것이 될 것이다. 실제로, 독일이 이길 것처럼 보였고, 그것은 바로 독일의 산업적, 인구적 우위 때문이라는 판단이었다. 이에 대한 대안은, 프랑스가 반드시 대륙에서 동맹세력을 재구축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이는 독일이 복수행동을 하는 것을 단념시키고, 그리고 만약 전쟁억제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독일을 패배시키기 위해서 였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들은 벨기에,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이탈리아 그리고 러시아와 협력을 모색했다. 파리의 구상에 따르면, 이들 국가들은 <프랑스 동맹 체제>의 일원이 될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프랑스의 오만이었지만, 이 동맹체제는 기꺼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동맹국들을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동맹국들이 도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군사전략상 <방어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방어적 동맹체제의 핵심에는 바로 <영국>이 이었다. 전간기 프랑스 정부들이 경제적 재정적 지원을 기대한 것은 바로 <영국>이었다. 대공황은 프랑스에 상대적으로 늦게 찾아왔고, 따라서 경제회복도 늦게 진행되었으며, 심지어 19384/4분기까지도 경제회복이 확실한 추세가 아니었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들은 독일의 위협이 필연적이 된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달성하기 위해서, 영국과의 재정협력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경제회복 없이, 재무장 속도를 높이지 않고, 프랑스는 독일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전쟁억제가 실패한다고 할 때, 영불동맹은 하나의 의무가 되었다. , 독일의 공격이 있을 때. 프랑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은 제1차 세계대전식의 전선의 교착상태였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영불연합군이 독일의 초반공세를 막아내고, 이후 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반격에 나선다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이는 몇년이 걸릴 것이라 계산되었다.


프랑스의 장기전 전략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버는 것이 필요했다 : 영국 석탄이 프랑스의 전쟁 산업으로 운반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 프랑스와 영국제국의 자원이 영국 상선을 통해 프랑스로 운반되기 위한 시간, 영불 연합함대가 독일을 경제봉쇄하기 위한 시간, 북아프리카 식민지 군대로 프랑스로 이동배치되기 위한 시간, 그리고 전장이 프랑스에서 동유럽으로 이동하기 위한 시간 등


결국, 영국의 원조는 단순히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없으면 절대로 안되는 것이었다.


몇몇 역사가들은 프랑스가 19363월 나치독일의 라인란트 점령과 재점령 때 와 19389월 뮌헨협정 때, 즉 독일에 대해 군사적으로 맞서야만 했을 때, 주저했고, 바보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장기전과 영국이라는 당시 프랑스외교의 핵심적 고민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바로, 영국정부가 1938년에 독일과의 군사적 충돌을 거부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하고, 프랑스는 영국의 지원이, 미리 확실하게 사전에 전제되지 않는다면, 전쟁의 위기를 감수할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의 악몽이란, 영국의 지원없이, 독일과만 11로 전쟁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의 프랑스는 겁쟁이가 아니었고, 차라리 상식적인 판단에 따르고 있었고, 그럼에 도 불구하고., 만약 프랑스가 바보 겁쟁이로 불려야 한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 영국 책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지원없이, 프랑스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전쟁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프랑스에게 전쟁은 장기전이 되야만 했는데, 영국의 지원없이 장기전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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