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간기 영국외교의 치명적 오판은?" Le monde



1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동안의 유럽외교사에서 일반적으로 지적하기를

영국은 독일에 대한 회유를 설득해 왔다면, 반면 프랑스는 독일에 대해 대항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역사가 마크스 Sally Marks 는 그의 논문 <1918년 과 그 이후>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영국은 1919년부터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의 지렛대라는, 자국의 전통적 역할로 돌아가고 있었고, 즉 프랑스와 균형을 이루고, 볼셰비즘을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독일>을 도모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영국은 프랑스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어리석은 희망을 돕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독일을 완전히 밀어준 것은 아니고, 독불양국에서 반감을 조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때로, 영국은 프랑스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독일에 대한 양보를 추진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서구주의자들을 러시아로부터 떼어두려고 했고, 프랑스를 약화시켰다.


이것은 전후 20여년 동안, 영국 지도자들이 대체로 견지하던 독일정책이 되었다. 이 정책은 과거 영국의, 고립주의, 대영제국에 대한 위기의식, 영국의 전전 경제와 정치적 헤게모니에 대한 향수, 유럽의 세력균형 상황에 대한 오판, 막대한 인명과 자금을 소모했던 전쟁으로 인한 희생에 대한 본전의식, 베르사유 조약을 강제하기를 꺼리는 정서 그리고 프랑스에 대한 공포의 산물이었다.


이같은 독일정책이 당시 영국상황에 대한 판단착오에 따라, 장기적인 세력균형을 오판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종전 직후, 프랑스의 육군력과 공군력의 일시적인 우위 와 프랑스의 잠수함 건조계획 때문에, 영국 지도자들이 다음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것은 바로 프랑스와의 일전이 될 것이라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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