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과 처칠의 엇갈리는 운명... Le monde

네빌 체임벌린은 1937년 5월에 영국 총리가 되었다. 영국의 대 독일 유화정책은 이미 전임총리 스탠리 볼드윈 시절부터 이미 뚜렷하게 나타났다.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가장 요란하고 완강하게 반대한 인물이 바로 윈스턴 처칠이었다. 역설적인 것은, 그의 정치역정 중에서 처칠에 대한 정치적 인기 와 평가가 최저의 바닥을 친 것이 바로 1937년 이었다는 점이다.


덧글

  • 천마 2011/02/11 14:25 # 삭제 답글

    당시 분위기가 전쟁은 가능한 피하자는 분위기었는데 안그래도 강성제국주의자 이미지인 처칠이 그 분위기에 초치는 소리를 (그것도 요란하게) 하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딱2년도 안되서 분위기가 반전되서 처칠은 앞날을 내다본 결단력있는 지도자가 되고 나름 최선을 다했던 체임벌린은 우유부단하게 사태을 키운 무능력한 인물이 되버렸으니 정말 엇갈리는 운명입니다.
  • 파리13구 2011/02/11 14:26 #

    그렇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