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에 맞선, 영국과 프랑스의 소련관? Le monde

다음은 테일러의 지적이다.


주데텐란트 위기를 중심으로 한 체코슬로바키아 문제가 제기되자 긴장한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소련이었다. 당시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에 제한적이나마 동맹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고, 유럽의 세력균형에 큰 영향을 받게 될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영국 과 프랑스의 소련관은 무엇이었나?

우선 영국과 프랑스는 소련이 군사적으로 약하다는 점만을 인정했다. 이러한 판단은 그들이 입수한 정보에 따른 것이자, 그들의 소망이기도 했다. 그들은 소련이 유럽에서 배제되기를 원했고, 실제로 배제되었다고 보았다.

그들의 소망은 한층 더 나아간 것일까? 그들은 소련을 배제할 뿐 아니라, 소련에 적대하여 유럽을 확립하고자 계획했을까? 나치 독일이 <볼셰비키의 위협>을 분쇄하도록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을까? 이것은 바로 소련이 당시에도, 또한 이후에도 의심하던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정치가들은 독일 문제로 너무나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독일이 동유럽에서 지배적인 국가가 되었을때,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독일이 만약 어느 방면으로 팽창한다면, 그것은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진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국의 목적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혹은 적어도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요구가 충족된다면, 그는 만족하고 잠잠해질 것이라 진심으로 믿었다.


- 제2차세계대전 전야에서, 유럽에서 중심적인 문제는 <독일문제>였고,
베르사유 체제가 개정되고, 독일이 다시금 유럽의 강대국이 되는 것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그것이 평화적인 것이 될지, 아니면 전쟁으로 귀결될 것인지가 중대 문제였던 것이다.

특히,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위기가 대두된 시점에서,
독일의 강대국화가 전쟁을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유화정책을 통해 추구하고자 한 것은,
최악의 경우, 독일이 전쟁을 도모한다면, 그 대상이 동쪽, 즉 소련과의 충돌하기를 소망했다면,
결국 나치와 독소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소련이 추구하고자 한 것은,
독일이 전쟁을 도모한다면, 그 대상이 서쪽, 즉 서양 자본주의국가들과의 충돌이 되는 것이었다. 

이같은 영국,프랑스 와 소련간의 인식은
점점 위험해지는 독일이 전쟁을 도발할 위험이 높다는 계산은 같았지만,
그 결론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나치 독일에 대해, 영국,프랑스 그리고 소련이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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