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데텐란트 문제에 대한 영국의 기본입장은?" Le monde

핼리팩스- 히틀러 회동...




 

[뮌헨협정]

[체코슬로바키아 분할]


주데텐란트 문제에 대한 영국외교의 기본입장은?



1938년의 뮌헨협정의 주요논제는 체코슬로바키아 의 주데텐란트 문제였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 문제를 당시 영국외교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역사가 테일러의 지적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이 문제에 대해, 영국 과 프랑스는 같은 계산 과정을 통해, 정반대의 목표를 설정했다. 그들이 전쟁을 하게 되는 것과 굴욕을 당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 위기를 피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같은 계산이었다.


두 나라 중 영국이 더 다급했다. 겉으로는 프랑스가 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즉 영국은 소멸해가던 국제연맹의 회원국으로서의 의무 외에 다른 의무에 구속되어 있지 않았지만,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와 맺은 동맹의 명확한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자신이 직면한 두통거리를 영국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프랑스는 히틀러에 대항하는 것을 논의할 수 있었고, 만약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하기를 거부한다면, 비난의 화살은 영국에 쏟아지게 될 것이었다.


이것이 묘한 결과를 가져왔다. 히틀러 ,베네슈 그리고 프랑스 모두가 위기가 고조되기를 원했고, 이는 영국이 결국 개입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위기를 피하고자 했던, 영국은 상황에 끌려가기 보다는, 상황을 주도하기를 원하게 되었다. 영국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가장 적극적이었다. 영국의 동기는 매우 숭고해 보였다. 그들은 유럽 전쟁을 막고자 했고, 뿐만아니라 1919년의 민족자결 원칙에 더 가까운 해결책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영국의 의도와 정반대였다. 처칠은 뮌헨협정 몇년 후, 다음과 같이 이를 평가한 바 있고, 이는 정확한 지적이었다. "영국 정부는 굴욕과 전쟁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정부는 굴욕을 선택했고, 그 결과로 전쟁을 얻었다." , 영국은 주데텐란트 독일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보고, 협상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실상 이 문제를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없었고, 이는 협상이 진행될수록 더욱 분명해졌다.


이렇게 영국은 위기를 피하고자 애쓰면서, 위기를 불러왔던 것이다. 물로 체코슬로바키아 문제는 영국이 만든 것이 아니지만, 1938년의 주데텐란트 위기는 영국의 작품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영국외교의 기본입장은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직후인, 1938312, 영국 외무부장관 핼리팩스 와 영국주재 프랑스 대사의 논의과정에서 잘 드러나고 있었다.


핼리팩스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 프랑스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지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이에 대사는 어떠한 명확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러한 프랑스 대사의 주저를, 당시 영국은 프랑스가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적어도 대답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 해석하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게 보내는 외교문서에서 영국은 르카르노 체제하에서의 자신의 약속만을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즉 영국의 관점에서, 로카르노 체제하에서의 영국의 약속 자체가 유럽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상당한 공헌이었고, 영국은 이 약속을 철회할 의사는 없지만, 프랑스에게 추가로 더 많은 약속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와 소련의 공동 군사작전이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었다. 영국은 만약 프랑스와 소련이 전쟁에 돌입하게 되더라도 봉쇄를 통한 경제적 압박만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에게, 체코슬로바키아 국가의 안전 보전을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독일계 소수 민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의 해결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였다.


핼리팩스는 프랑스 대사에게 다음과 같은 개인적 의견을 피력했다. « 매우 솔직하게 말해서 시기가 좋지 못하다. 또한 우리의 계획은 공격 계획이건 방어 계획이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 또한 프랑스가 주장한, 강력한 외교적 <선언> 요구조차도 거부했다. 핼리팩스는 “프랑스는 아마도 강력한 선언의 가치를 우리보다 더 높게 선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


한편, 핼리팩스는 1938317, 소련 정부가 영국에게 이 문제를 국제연맹 안에서 혹은 밖에서든, <모두 함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실질적 방법을 찾기 위한 논의를 제안해 온 것이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이에 영국 외무장관은 이 제안이 <어떤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러시아에게, « 미해결 상태에 있는 문제들의 해결의 보장하기 보다는, 침략에 대한 공동 행동을 조직하기 위해 구상된 회의라는 것이 유럽평화의 전망에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 답변했다고 한다.




덧글

  • 곰돌군 2011/02/07 14:25 # 답글

    음, 만약 영국이 당시에 전쟁도 불사할수 있다는 의향을 프랑스 등과 공동으로
    발의 했다면, 독일의 질주를 멈출수 있었을까요? 히틀러는 강인한 지도자상을

    연출하는대 있어서는 천재적이었지만, 그의 행적들을 뒤집어 보면
    과격하고 편협한 반면에 의심이 많고 신중한 성격이었다는 기록들도

    있는데.. 역사에 가정이란건 그다지 의미가 없지만, 궁금하군요.
  • 파리13구 2011/02/07 14:32 #

    당시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영국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 영국 정치지도자라면, 이런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것이 다른 것도 아닌, <전쟁>이었다면,
    위기는 히틀러가 아니라, 영국 내부의 국내정치 상황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뿐만아니라, 히틀러를 말로 협박할 수는 있었겠지만,
    실제로, 군사적으로, 그럴 능력이 있는 나라는 없었다는 것이
    네빌 체임벌린의 고민이 아니었나 합니다.
  • DC_덱스터 2011/02/07 14:49 # 삭제

    아무래도 영국 입장에서는 히틀러보다 소련의 압박이 더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히틀러가 소련의 방패막이가 되어준다면, 어느정도의 팽창은 눈감아줄수 있다. 하는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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