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협정]베네슈의 체코가 자신감을 가졌던 이유는? Le monde

에드바르트 베네슈 Edvard Beneš


뮌헨협정 이란,
체코슬로바키아 내 독일인 문제에 대한 독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1938년 9월 29일에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 4개국이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을 결정한 조약이라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렇다면, 체코슬로바키아가 뮌헨협정에 따른 <분할>이라는 치욕을 당하기 전의 상황은 어떤 것이었나?

서류상으로 보면, 체코슬로바키아의 동맹 관계는 강력해 보였다. 1925년 프랑스와 맺은 상호 방위 동맹이 있었고, 1935년에 맺은 소련과의 동맹이 있었다. 그러나 후자의 동맹은 프랑스가 먼저 행동할 때에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시 프랑스의 외교전략과 군사전략의 불일치는 체코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체코를 위해, 먼저 프랑스가 나서야, 이어서 영국과 소련이 개입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프랑스 군사전략은 공격이기 보다는 방어적이었다.]

그리고, 헝가리에 대항하여 맺은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와의 <소협상>이 있었다.

하지만 베네슈 대통령은 이같은 안보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지 못했다. 그는 소련과의 동맹을 의도적으로 등한시 했다. 그의 관점에서, 소련과의 동맹은 프랑스와의 동맹을 보완하는 것이지, 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만약 프랑스가 중립을 지키더라도, 소련이 체코슬라바키아를 지원할 것인가 같은 문제를 고민해 볼만 했을 것이다.

베네슈는 서방주의자였다. 그는 영국 공사 뉴턴에게 "체코슬라바키아의 대 러시아 관계는 이제까지 항상 부차적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군대는 굉장히 강한 군이었고, 장비가 잘 갖추어진 체크군 34개 사단이면, 어쩌면 도움을 받지 않고도 훈련이 덜 되어 있었던 1938년의 독일군에 대적할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네슈는 전면전 상황을 제외하고, 절대로 체크 군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베네슈는 크게 걸고 히틀러와 한판 붙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장 큰 모험까지는 하고자 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그는 푹풍에 머리를 굽히고 굴복하여 체크인들이 살아남기를 바라고자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살아남았다.    


덧글

  • 들꽃향기 2011/02/07 21:47 # 답글

    '만약에'라는 책에서도 당시 체코군의 전력과 당시 독일군이 기동훈련에서 보였던 미숙함 등을 배경으로 해서 체코가 전쟁을 벌였을 경우에 독일군도 만만하게 이기지 못햇을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베네슈의 판단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언급하신대로 소련과의 동맹은 프랑스와의 동맹이 작동할 때에만 작동하는 것이었으며,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으니깐요.

    더군다나 체코는 헝가리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의 중개로 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와 소삼국 동맹을 채결햇었는데, 헝가리-폴란드 역시 체코에 대해서 영토적 야심을 드러낸 것에 비해 이들 소삼국 동맹의 구성원들이 체코를 얼마나 지원하려 했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에 외교적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영-프의 입장이었고, 영-프의 결단이 없다면 체코슬로바키아의 입장 역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을테니깐요. ㄷㄷ

    결국은 체임벌린을 깝시다. 체임벌린은 나의 원쑤. (...)
  • 파리13구 2011/02/08 12:17 #

    저는 프랑스도 문제였다고 봅니다. 군사적으로 볼때, 프랑스는 움직이지 말아야 할때 움직이고, 움직여야 할때 복지부동함을 통해, 당시 유럽의 세력균형 장치를 고장낸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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