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승리한 이유는? (2) Le monde

[스탈린그라드]소련이 승리한 이유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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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소련이 전투에서 이겼을까 ? »



프랑스 파리 - 월간 <역사> 20012월호 252





니콜라 베르트



Nicolas Werth





2.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동원



독일의 제국보안본부의 1942817, 비밀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독일인의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다음을 인정하고 있다. 독소전쟁이 시작 된지 몇 달 만에, 우리는 거대한 환상의 희생양이라는 정서가 확산되었다. 러시아의 뛰어난 대규모 무장능력, 그것의 기술 수준, 이 나라의 거대한 산업화 등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 병사들도 차이가 엄청나다는 점을 눈치채고 있다. 즉 한편 빈곤 과 원시적인 국민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 거대한 미국식 산업시설 과 발전소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사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어떻게 볼셰비키들이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 이 체제에도 긍정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 »



확실히, 동부전선에서 가장 놀랄만한 것은 독소전쟁 초반부터 드러난, 소련의 특이한 능력이었고, 소련은 군수공장들을 우선 철수시키고, 곧 후방에서 많은 군수공장들을 재가동 시킬 수 있었다. 19417월부터 12월의 5달 동안, 독일의 침공 이틀 후에 결성된 <철수위원회>1530개의 대공장들을 동쪽 후방으로 철수시켰고, 이는 매우 복잡한 대규모 작전이었다. 가령, 드니에프로페트로프스크의 한 강철 제련공장을 우랄 산맥 너머, 우크라이나의 마그니토그로스크로 이전시키는데, 8000대의 트럭이 동원되었다. 이렇게 1942년 말까지, 2600개 이상의 공장들이 철수되었다.



이 같은 공장철수 이전 작업은 우랄산맥 너머의 시베리아,카자흐스탄에서 진행되었고, 이는 매우 가혹한 조건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고, 18개월동안 1000만명 이상 노동자들이 동원된 것으로 보이고, 이들은 열악한 막사생활을 감수해야만 했고, 거의 굶어가면서 하루 12시간에 14시간의 노동을 해야만 했다.



여성들과 기술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들이 대규모로 동원되었고, 이는 대략 2000만 명의 남성들이 전쟁에 동원되고, 나치가 인구 수 천만명을 보유한 소련 영토를 점령한 것에 따른 인원손실을 보충하기 위해서 였다. 1940년에서 1944년까지, 산업생산에서 여성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37%에서 60%로 증가했다.



굴락 수감자들도 이에 공헌했다 : 대략 수천만 명의 수감자들, 때로 형기를 마치기 전에 석방되기도 했고, 물론 정치범은 여기에서 제외되었고, 무기 공장에서 일했다 ; 그리고 100만 명 이상이 굴락에서 전장으로 이동배치 되었다. 굴락 당국에 따르면, 수감자들이 무기, 야금 그리고 광산 등 몇몇 핵심 산업분야에서, 20% - 25%의 생산을 책임지고 있었다고 한다.



공장의 철수 및 재조립 작전이 확실하게 상대적으로 용이했던 것은 오스카 랑주 Oscar Lange 의 지적처럼, 소련 경제가 <다른 어떤 것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특수한 경제>였기 때문이고, 소련경제는 1930년대 초부터, 극단적인 조건 하에서 운영되었고, 군사적인 방식으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시민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939년부터, 산업생산은 전시경제로 전환되었고, 많은 공장들이 군수공장이 되었다.



뿌리깊은 신화와는 달리, 독소전쟁 초기부터, 붉은 군대는 독일 군대에 맞서, 인상적인 군사 자원을 가지고 싸웠다. 19391월부터 19416월까지, 소련 전쟁 산업은 18000대의 항공기들을 생산했다. 독일의 침공시, 소련군은 대략 240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련전차들은 개전 6개월 만에 최소 80% 정도가 파괴되게 된다. 하지만, 1941년의 패배는 기술적 취약성 때문이 아니라, 매우 심각한 전략적 전술적 오류들 때문이었고,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스탈린>에게 있었다.



이 같은 유례없는 대패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전차 생산량은 19412/4분기부터, 독일의 전차 생산량을 앞서게 된다. 1942, 소련의 무기 생산은 양적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독일의 그것을 능가하게 된다. 소련과 독일간의 무기생산 격차는 계속 벌어지게 되고, 1944년 말에 가면, 대략 3 :1 의 격차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소련의 약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전쟁 말기 까지, 소련군이 전파 통신 과 레이더 장비를 가지고 있지 못했고, 파괴에 따른 손실이 매우 컸다는 것이다 : 가령, 동프러시아에서의 최종 공세 동안, 소련의 전차 제5군단은 단 25일 동안, 보유 전차의 72%를 잃었다 ! 그리고 붉은 군대는 전쟁 말의 불과 4달 동안, 전사자 80만명 과 부상자 220만 명을 기록하게 된다.



한편, 소련 지도자들은 항상 원조조약에 따른 연합국들의 지원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원, 40만대의 트럭과 지프 지원은, 당시 소련군이 매우 필요로 하고 있던 것이었고, 2000대의 기관차, 2백만 톤 이상의 석유제품, 70만 톤의 비철금속 그리고 특히 450만 톤의 기초 식료품, 그 중 유명한 것은 콘비프(쇠고기 소금절이)였고, 이를 소련군인들은 <2전선>이라 불렀고, 이 같은 지원은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이 같은 지원은 소련 경제가 군수산업 중심의 전시경제로 전환한 것에 따른 생산 불균형을 줄이고, 소련이 군수산업에 집중하는데 도움을 제공했던 것이다.




덧글

  • 액시움 2011/01/31 13:18 # 답글

    공장 옮기는 것은 거의 기지 띄워서 도망가는 테란 수준이군요. ㅡㅡ;

    당대 소련의 인력과 물력이 대체 얼마나 되었던 것인지... 서구권에서 다뤄지는 소련의 이미지를 보면 동원력에서는 중국 이상의 괴물로 묘사되더군요. 지금도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이라고 하면 첨단 기술의 미국과 물량빨의 러시아라는 이미지가 있던데,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GDP면에서나 기술면에서나 물량면에서나 불곰 친구들보다 우월했죠. -_-; 특히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는....;;

    이런 이미지의 형성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 파리13구 2011/01/31 13:26 #

    저도 궁금합니다...
  • 천마 2011/01/31 13:43 # 삭제 답글

    확실히 소련이 산업시설을 우랄산맥너머로 이동시키고 다시 가동시킨건 역사적사실이 아니라 픽션처럼 느껴질정도로 엄청난 일입니다. 만일 역사적사실이 아니라 소설에서 이런 상황이 나왔다면 비현실적인 설정이라고 욕을 먹었을 겁니다.

    그리고 소련에 지원된 물자중 병기등은 별로 평가가 좋지 못하더군요. 셔먼이 거주성이 좋고 성능이 안정됐다거나 P-39에어라코브라가 좋은 평가를 받은 정도입니다. 하지만 글에도 나와있듯 각종 차량이나 식량, 장갑과 장화등 생활물자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게 역사가들의 공통된 평가더군요.

    참고로 "콘비프(쇠고기 소금절이)"는 스팸통조림을 말하는 거 같습니다. 이것도 크게 환영받은 물건이었다죠.
  • 파리13구 2011/01/31 13:45 #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 팬져곰 2011/01/31 14:01 #

    셔먼이 거주성이 좆고 성능이 안정되어 봤자 소련같이 좆같은 야지에선 서스펜션 애미 퇴갤해서 거의 기는수준
    이런 셔먼보단 발렌타인이 더 높은 평가 받았음.기계고장도 별로 없고 16톤밖에 안돼서 가벼웠거든
  • 에드워디안 2011/01/31 14:03 #

    여담이지만 소련에 넘어간 에어코브라 전투기 중 일부는 훗날 북한공군에 인계되어, 한국전쟁 초기 미군을 공격하는 시대의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했다지요...-_-
  • 에드워디안 2011/01/31 14:05 # 답글

    저 정도의 물량빨을 보유했으니, 심각한 내부 모순과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냉전시절 미국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이지요...ㄷㄷㄷ
  • 파리13구 2011/01/31 14:09 #

    마치 다수의 멀티를 보유한, 폭풍 저그 같은 모양새 였다고 생각합니다. ^ ^
  • 곰돌군 2011/01/31 14:50 # 답글

    소련의 동원 능력은 사실 제정 러시아 시절에 확립된 독특한

    지배 체계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던데.. 차이점이라면

    정책의 계획단계에서 추진까지 어느것 하나 일관성과 지속성이라곤 찾아 보기

    힘들었던 제정 시절에 비해서 공산당 1당 독재하의 소비에트 연방

    초기에는 (어디까지나 제정시절에 비해서) 조직적인 통제가 가능했던

    것이 비결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뭐 그래도 저 공장 이전은 사실

    꽤나 불가사의 합니다...(...)
  • 파리13구 2011/01/31 14:58 #

    그렇습니다...
  • 듀란달 2011/01/31 15:55 # 답글

    병기도 병기지만 인해전술도 장난 아니었다더군요. 어느 독일군 장교는 "저 놈의 이반들은 오늘 1개 사단을 녹여버리면 내일 10개 사단으로 부풀어서 달려든다"라고 한탄할 정도였으니까요.

    긴급 징집된 소련군 병사들은 독일군의 포격 때 흩어지지 않고 되려 출신지 사람들끼리 똘똘 뭉치는 습성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량수가 워낙 많아서 소련군의 전선 유지에 큰 몫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건 뭐 시즈탱크에 달려드는 저글링 떼도 아니고 ㄷㄷㄷ
  • 파리13구 2011/01/31 16:07 #

    저글링...^^
  • 아름다운마을 2011/02/01 01:00 # 삭제 답글

    엄청난 포스가 느껴지는 포스팅이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명절 잘 보내시기를~~~
  • 파리13구 2011/02/01 03:38 #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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