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은 루이14세에게도 없었다!" ^ ^ Le monde



역사적으로 루이14세 하면, <짐은 국가다>라고 주장하면서,
절대권력을 행사한 프랑스 국왕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루이 14세가 스스로 자신의 권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

실제로 루이14세는 몇몇 장관들이 행사하는 영향력 하에 있었다고 한다. 

가령,

재정적 조언에 대해서는 장 밥티스트 콜베르 Colbert 장관을 깊이 의존했고,
군사전략에 대해서는 마르퀴스 드 루부아 Louvios 장관을 의지했다. 


루이14세는 그들 없이, 국가를 통치할 수 없었다.
특히, 그는 취약한 결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아랫사람들의 아첨을 유난히도 좋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은 바로 루이14세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취약점은 장관들과 정부(애인)들, 귀족들이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다고 한다. 

가령, 루부아 장관은 칭찬 혹은 아첨에 유달리 약한 왕의 약점을 적절하게 이용,
평소같으면 개입하지 않았을 전쟁에 왕을 끌여들였다고 한다. 즉 루이 왕은 다른 어떤 장군들도 가지지 못한 전쟁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추켜세우는 식으로 말이다. 

결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자라 해도, 
타인의 영향력과 설득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 미셸 푸코의 지적처럼, 권력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행사되는 것이라면,
비권력자가 권력자를 다루는 한가지 방법은
권력자가 권력을 소유하고 있고, 그 소유권은 절대적이라고 믿게 만들면서,
바로 그 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권력자 혹은 아랫사람이 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에서 개입에 성공하고,
권력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권력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데 성공한다면,

진정한 권력자는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그 <아랫사람>이 될 것이다. ^ ^


덧글

  • 에드워디안 2011/01/24 11:31 # 답글

    그래서 중국 명나라의 개국시조인 태조 주원장은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아예 재상직을 폐지해버릴 정도였죠. 말 그대로 모든 국정을 황제 개인이 혼자서 처리했음. 그 아들 성조 영락제도 '동창'이라는 비밀경찰조직을 창설해 공포정치를 강행...

    그러나 이러한 독재는 심신이 대단히 강력한 군주가 출현할 때만 가능한 것으로, 영락제 이후엔 약체 황제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바람에 '내각대학사'라는 직책이 설치되어 사실상 재상의 업무를 수행해 나갔습니다. 즉, 주원장-영락제 방식의 독재정치는 더 이상 출현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 파리13구 2011/01/24 11:35 #

    네, 절대독재란, 절대적으로 피곤한 체제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그 독재자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라 봅니다.

    차라리 독재를 하면서도, 권력을 측근들에게 적절하게 분산해서.

    장수하는 독재가 더 무섭고, 위험하다고 봅니다. ㅋㅋ
  • 에드워디안 2011/01/24 11:35 #

    그래서 주원장-영락제 부자의 독재정치를 중국사를 통틀어서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 지적하는 사학자도 있을 정도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1/24 11:36 #

    그런데 주원장은 그토록 무자비한 숙청과 독재정치를 강행했음에도, 무려 31년간 재위했었죠. 70세가 넘어 사망했으니,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장수한 셈... 정말, 알면 알수록 대단한 인물입니다. '중국판 스탈린'이라고나 할까...ㄷㄷㄷ
  • 파리13구 2011/01/24 11:36 #

    그렇군요..^ ^
  • DreamersFleet 2011/01/24 17:29 #

    에드워디안/ 그런 주원장도 말로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 같습니다만,,, 숙청의 칼바람이 부메랑이 되어 자기 자신도 주체하지 못했다는 것 같던데요.
  • 에드워디안 2011/01/24 18:37 #

    DreamersFleet//

    일종의 '고독감'에 빠졌다고 하지요. 아내인 마황후와 황태자가 잇따라 죽은 뒤로는 고독감에 휩싸인 것은 물론, 나이가 들면서 정신력도 쇠퇴하는 동시에 의심증이 심해져 황손의 안위가 지나치게 걱정된 나머지, 모든 유력자들을 제위를 노리는 강적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편집광이 되어 한 번 살인을 시작하자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고, 그만큼 말년에 갈수록 숙청 규모도 더욱 커져갔지요. 또한 주원장 개인의 정신도 문제가 많았지만 특히, 1세기간 지속되어 온 몽고족의 지배가 중국인의 심리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계속되는 숙청으로 개국공신이 거의 일소되어 버려 그만큼 주원장의 권력이 강화되었지만 동시에 황손을 보위할 지지세력도 사라져버린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훗날 영락제가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중앙정부의 '인재 고갈'이 한 몫 했으리라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 rumic71 2011/01/24 12:46 # 답글

    박통은 어떤 타입으로 봐야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아랫사람들 도움은 많이 받은 듯 싶은데 자신이 그들을 조종해버렸으니...
  • 파리13구 2011/01/24 12:59 #

    글쎄요? ^^
  • 크핫군 2011/01/24 17:16 # 답글

    솔까말 절대군주라고 해서 막 동양의 그 군주정하고 착각하면 좀 문제가 많죠. 패리 앤더슨옹이 잘 설명함 이 분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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