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8일차, 케네디가 <8월의 포성>을 인용하다 (2) 쿠바 미사일 위기

위기 8일차 , 미국 당국자들의 논의들...(1)




 

화요일의 국가안전보장회의 2차 회의가 끝난 이후, 케네디 대통령은 특별보좌관 케네스 오도넬, 연설문 보좌관 테드 소렌슨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와 집무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대통령은 바바라 터크만의 <8월의 포성>을 읽었고, 이 책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된, 열강의 계산착오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 책을 독파하면서, 1962년이 절대로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 우리는 판단착오를 범해서는 안되고, 적이 의도하지 않았던 혹은 예견되지 않았던 방향으로 대응하도록 강압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위기 2주차 동안 대통령의 지도력은 <주의 와 노련미>로 특징될 수 있다. 이같은 자질들은 바로 196210월 이전에, 케네디 대통령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케네디는 초저녁에 흐루쇼프의 편지에 답장했다. 그는 소련이 위기를 도발했다고 비난했고, 러시아 선박들이 봉쇄선을 넘어서면 안될 것이라 경고하면서도, 그의 편지는 더 온건한 어조를 유지했다. « 나는 우리 모두가 신중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그리고 이미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케네디는 백악관에서 포고령 3504호를 발표했고, 이는 그 다음날부터 <봉쇄>가 공식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이날 화요일은 또한 의회와 언론의 지지를 얻기위한 노력이 집중되었다. 딘 러스크는 미주 기구에서 만장일치의 결의안을 이끌어냈고, 이에 따르면, 쿠바로부터의 소련 미사일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유엔대사는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의 방어정책의 정당성을 맹렬하게 주장했다. 맥콘은 의회 지도자들과 언론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은 <타임>지 발행인을 백악관으로 초대해서 , 특별 브리핑을 했다.


케네디 와 그의 참모들은 <봉쇄>를 구체화 시켜나갔지만, 그들은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한 토론에는 상대적으로 적인 시간을 할애했다. 즉 만약 봉쇄가 소련의 미사일 철수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말이다. 당시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베를린 과 카스트로 제거였다. 유럽에서의 소련의 보복을 두려워한 케네디는 CIA에게 만약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하면 발생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분석을 요구했고, 베를린에 대한 케네디의 우려가 사실무근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날, 도블리닌 소련 대사가 베를린 봉쇄에 대해 소련당국과 교신했고, 흐루쇼프도 이 카드를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측근들과의 논의 과정에서, 소련서기장은 위기를 지리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마치 케네디 처럼, 흐루쇼프도 더 주의를 기울였고, 위기 동안 상식적인 대응을 보여주었다.


한편 몇몇 미국 고위당국자들은 이번 위기를 통해, 핵무기의 제거 뿐만 아니라, 피델 카스트로도 제거해야 마땅하다고 여전히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전쟁없이 미사일을 제거한다는 케네디의 관점과 충돌하고 있었다. 카스트로 제거론자들은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통해, 소련과의 협상에 나선다는 발상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정부 내부의 분열이 소련과의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덧글

  • min 2015/08/31 19:27 # 삭제 답글

    resource 뭔지 알려주실수있으세요ㅠㅠ? 흥미있어서요ㅠㅠ어디서 정보얻어나궁금해서요!! 데이10이후는 더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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