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위기 2일차,미국당국자들의 논의들... 쿠바 미사일 위기

쿠바위기 첫날,미국 당국자들의 입장...


 

쿠바 미사일 위기 2일차인, 19621017일 수요일,


케네디 대통령은 여전히 공습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 날, 케네디는 정부 방침이 결정되기 전까지, 이 문제를 비밀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언론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미리 예정되어 있던, 11월 중간선거를 위한 민주당 후보 지원 활동을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유세여행을 떠나면서, 케네디는, 중앙정보국 국장인 존 맥콘에게

당시 펜실바니아의 게티스버그의 그의 농장에서 은퇴 중이던,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만나 자문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맥콘의 사건보고를 받은, 아이젠하워는 케네디의 입장과 유사한 방안을 선호했다고 한다. 전 대통령은 소련에 대한 말을 통한 항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해상봉쇄도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외교적 혹은 해상 봉쇄 보다는, 아이젠하워는 아바나 체제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군사 행동을 제안했다. 그는 이 작전을 공수 사단들의 투입을 통해 실현가능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위기 2일차, 이 날의 국가안전보장회의 행정위원회 회의는 케네디 대통령 이 부재 중인 가운데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 대부분의 참석자들의 의견은 두 가지 방안을 중심으로 모아졌다 : 해상 봉쇄 그리고 공습. 해상 봉쇄 지지자들로 전직 소련 주재 미국대사, 류엘린 톰슨 과 국무부 관리인 에드윈 마틴 Edwin Martin 이 있었다면, 존 맥콘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 과 맥스웰 테일러 합참의장 은 공습 지지자들이었다.


이 날 회의에서 논의를 주도한 것은 로버트 케네디 와 딘 애치슨,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었다.


우선 로버트 케네디는 전날의 <침공> 주장을 스스로 철회했다, <진주만>사건을 염두에 둔, 로버트 케네디는 도덕적 고려 때문에 침공론을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즉 군사적 침공은 미국적 가치에 위배되며, 수천명의 무고한 쿠바 민간인들을 사지로 몰게 되고, 미국 정부의 국내에서와 국외에서의 도덕적 권위를 손상시키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만약 대통령이 침공을 허락하면, 그는 1960년대의 도조가 되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딘 애치슨은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미국은 이미 모스크바에 쿠바로의 미사일 배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이미 통보한 바 있고, 반면 일본은 진주만 기습 이전에, 이와 유사한 경고를 한 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1941년과의 비교는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바로 시간 문제라는 것. 즉 만약 해방봉쇄가 실행된다면, 소련은 쿠바 배치 미사일 가동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고, 이후의 미국의 군사행동은 바로 이같은 불리한 여건 속에서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사일 시설에 대한, 즉각적이고 경고없는 기습적인 공습이 더 좋은 방안이라는 것이다. 해상봉쇄와는 달리, 공습으로 핵무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련 미사일이 아직 가동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소련의 흐루쇼프는 쿠바로부터의 핵반격을 명령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위험이 낮은 전략이라는 것이다. 애치슨은 미사일 시설에 대한 <신속 정확한 공습>안을 지지했다. 그는 다른 매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른 소련군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 해상봉쇄 와 공습 이외의, 3의 방안도 바로 이 날 제기되었다. : 즉 쿠바 미사일 제거를 위한 외교력 사용 방안.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인 찰스 볼렌 과 국제연합 주재 미국대사인 애들라이 스티븐슨이 바로 이 안을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볼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는 쿠바에 대한 어떠한 군사행동에도 반대한다. 특히 사전 경고 없는 공습이 그렇다.


이는 우리 동맹국들을 분열시킬 것이고, 전세계로부터의 각종 비난을 불러올 것이다.


나는 우선 흐루쇼프 와 카스트로에게 경고서한을 보낼 것을 제안한다. 만약 그들의 답변이 부정적이고, 불만족스러울 경우,


그때가서 우리는 군사행동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 우선 우리의 주요 동맹국들의 자문을 구하고, 남미의 미주 기구 회원국들의


표결을 부쳐, 2/3 이상의 지지가 있을 경우, 그때가서 행동에 나서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외교적 해결방안은, 1020일 토론에서의 스티븐슨의 제안,

,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 와 함께, 소련과의 협상도 시작하자는 제안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스티븐슨의 이 날 회의 메모는, 대통령에게 경솔한 군사행동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핵전쟁을 시작하거나 그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기껏해야 불화만을 초래할 뿐이다. 그리고 역사적인 결정이 순간적인 기분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방안에 따르면, 우선 모스크바 와 아바나에 미사일이 반드시 철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은 군사행동에 나서는 것이 수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제안이 수용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대통령은 터키 와 이탈리아의 주피터 미사일 철수 문제를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표시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까지, 케네디는 스티븐슨의 제안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이 제안들이 그를 성가시게 만들었을 뿐이다.



워싱턴에서, 쿠바 미사일 문제로 격론을 벌이는 동안, 소련은 자신의 첫 정찰 위성인 코스모스 10호 발사에 성공했다. 궤도에 진입하자 마자, 이 위성은 첩보 사진들을 소련 당국에게 전송했고, 이는 소련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진 자료에 따르면, 미국 동남부에서 미군이 집결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덧글

  • 행인1 2010/12/07 12:48 # 답글

    여담이지만 아들라이 스티븐슨은 1952년, 1956년 대선에도 나온 인물입니다. 아이젠하워에게 패배했지만요.
  • 파리13구 2010/12/07 12:52 #

    네, 제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정치인입니다...^ ^
  • 천마 2010/12/07 14:48 # 삭제 답글

    영화 "D-13"이 이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잘 그렸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영화입니다.(DVD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결국 이 해상봉쇄와 외교협상안이 사태를 해결하게 되죠. 가장 약해보이던 생각이 상황을 가장 안전하게 해결한 셈입니다. 하지만 양측 모두 자제를 하긴 했다지만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많았던 사건이었습니다.

    가령 RF-8정찰기가 공격받은 사건이나 U-2 격추등의 상황이 그랬죠 그중에서도 특히 위험했던건 해상봉쇄당시 폭뢰공격을 받은 소련잠수함 함장이 이것을 미소전면전이 벌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핵어뢰로 미함대를 공격하려던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소련잠수함은 핵무기를 사용하려면 함장, 부함장, 정치장교 이상 3인이 모두 승인해야 하는데 부함장 "Vasiliy Arkhipov"가 반대했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모스크바가 정말 공격받고 있는지 확인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서 결국 발사를 막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사건이 영화 "크림슨 타이드"의 모델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 파리13구 2010/12/07 14:55 #

    흥미로운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네, 위기시, 상부의 지침이 하부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하부에서 그 지침이 정반대로 집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위기 관리라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하고,

    특히, 이 당시 핵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어떤 합리적 분석 모델을 떠나,

    단지 우리 인류가 운이 좋았다는 점을 믿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