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케네디 그리고 녹음기록... 쿠바 미사일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
,케네디 그리고 녹음기록


196210월 중순, 냉전은 전례없이 격화되었다. 오랫동안 미국의 사실상 식민지였던 쿠바는 소련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해 9월말, 미국 신문들은 소련 선박이 쿠바로 무기를 이송 중이라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그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 무기들은 방어용이지, 공격용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케네디에게 그 발표가 맞다고, 절대적인 보장을 해주었다. 케네디는, «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거대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라고 경고했다.


1016일 화요일 아침 9시경, 케네디의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가 그의 침실로 ,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가지고 왔다. U-2 정찰기가 고공에서 촬영한 이 사진들은 쿠바에서 소련이 미국 도시들을 겨냥하는 핵탄두 미사일을 설치 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케네디에게, 이 미사일들의 존재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흐루쇼프가 그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후 13일 동안, 케네디와 그의 참모들은 이같은 소련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해야 할지를 두고 토론하게 된다. 그들은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토론과정에서, 케네디의 민간 국방 전문가들은 미국 국민들이 놀랄만큼 핵공격으로부터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 « 보호 시설은 도시들에만 존재할 뿐이고, 시골에는 약간의 혹은 거의 아무런 보호시설도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시골지역에 5천만명이 살고 있고, 도시 거주자들도 2 혹은 3백만 톤의 TNT의 파괴적인 위력에 직면해서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위기 동안, 미국 고위당국자들의 논의는 백악관에서 진행되었고, 논의 동안, 테이프 녹음기가 돌아아고 있었다. 케네디와 아마도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제외하고, 논의에 참가한 다른 어떤 누구도 이것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위기의 순간에 있었던 솔직한 논의를 담은 기록으로, 이 테이프들은 역사상 전후무후한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여름 동안, 이 녹음장치를 설치했다. 역사 애호가이자 저자의 한 사람인, 그는 미래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런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정확한 동기를 알지는 못한다. 이것은 전례를 가지고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책상에 숨겨놓은, 딕타폰 으로 몇몇 대화들을 녹음했다고 한다.


녹음시스템은 간단했다고 한다. 국무회의실의 사용하지 않는 조명기구에 마이크를 숨기고, 이 마이크 음성이 백악관 지하에 있는 녹음장치로 전송되고 녹음되는 것이다. 마이크는 대통령 집무실에도 설치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녹음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비밀 단추를 눌러야만 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쿠바 미사일 위기 13일동안 , 국가안전보장회의 행정위원회 회의에서 오고간 대화들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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