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공리주의와 싸울 수 있는 무기? Le monde

현대사회에서 공리주의가 가지는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고,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일부 정치인 조차

선거전술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공리주의 철학이다.


이제 맞서서, 반공리주의 진영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역시 도덕철학 밖에 없다고 본다.

공리주의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좋음>이 최대가 되는 것이 <옳음>이라고 주장할때,

이에 맞선 반론은 그것이 최선의 길인가,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본다.

또한 모든 공리주의의 치명적 약점은 그 최대 다수에 포함되지 않는 , 소수의 희생자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가령, 민주당이 이명박 정권 심판 논리를 앞세워, 특정정당의 후보 사퇴를 강압할때,

고대 로마 콜로세움에서, 로마인의 즐거움위해 기독교인들이 사자밥이 될때,

사르코지가 프랑스의 치안공리를 위해, 집시에 대한 추방을 정당화 할때,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 승리를 위해, 고문을 용인할 때,

18세기초 영국 자본주의가 그 산업 경쟁력을 위해, 아동 노동을 정당화 할때,

이상의 천박한 공리주의들이 양산하는 것은

어슐러 르 귄 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그린 바 있는 그 아이들이며,

사회 전체의 행복의 조건이 아이의 불행에 기반하고 있는 식의 

희생양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 전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그 희생의 조건,즉 사회적으로 관용이 가능한 희생의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관용의 조건이란, 그 문제가 절대악과 관련이 없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의의 문제와 충돌하지 않을 경우로 한정된다고 본다.

즉, "관용의 정신은 정의에 관한 이견까지 확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에서, 고문이 정당화되는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공리주의가 이견이 존재할 수 없는 정의의 원칙 중 하나의 고문폐지의 문제까지

고문의 불가피성 및 정당화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다.


공리주의가 그 천박한 논리를 탈피하고, 정의의 원칙에 입각한 양심적인 주장이 되려한다면,

최대다수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논리가 통할 수 없는,

공리주의를 주장할 수 없는, 영역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이는 평등한 인류의 평등권,인권 등의 해당되는 정의원칙을 공리주의가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 본다.

즉,인류는 반인륜에 해당하는 행복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는, 공리주의의 적용한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를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것은 바로 <도덕> 이라 본다.

도덕은 공리주의의 천박성을 견제할 수 있는 인류의 무기가 아닐까?

공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정당하고, 올바른지 질문을 던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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