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동의,저항 그리고 수용... 레지스탕스



일반적으로 파시즘 과 국민간의 관계를 규정할 때,

"동의냐 저항이냐"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탈리아 역사가, 루이자 파세리니는 <수용> acceptance 라는 관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1939년 토리노를 방문한 무솔리니에 대해 피아트 노동자들이 보여준 태도가 바로 <수용>이라는 것이다.

즉 무솔리니 방문 현장에서 앞줄에 도열해 있는 사무직 종업원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한 반면,

뒷줄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파세리니는 이 전설적인? 침묵이

"일상적으로 수용된 권력에 대한 문화적 적대로 출현한 내면의 징후"라고 진단한다.

그 내면의 징후는, 당시 공산주의 계열 노동자였던 자노 Giano  의 구술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1939년 이었다. 무솔리니가 토리노에 왔을 때, 사람들은 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슬을 여전히 끊어버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불평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걸 견디고 있었다."


이 수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1939년 토리노 노동자들은 동의하지도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지만,

동의하기도 했고, 저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파시즘에 대한 <수용>은 이에 대한 지지 혹은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이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용>이 저항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파세리니가 소개한 피오라 라는 한 여성 노동자의 증언은

저항적 성격을 가지는 <수용>이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파세리니 : 슬하에 자식은 몇 명인가?

피오라 : 셋이죠.

파세리니 : 모두 살아 있나요?

피오라 : 그럼요. 그럼요. 모두 살아 있어요.

난 아이를 더 가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무솔리니를 괴롭히기 위해 그러지 않았어요. 아시잖아요! ^ ^


아무튼, <수용>이라는 개념은

동의도 아니고, 저항도 아니지만,

조용한 침묵이 가지는 적응 혹은 반항을 설명하기 위한 좋은 개념이라 본다.

이렇게 본다면, 1939년 토리노 노동자들은 파시즘에 대해 조용한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 침묵은 적응적이면서도 반항적이라 보는 것은

결국 이탈리아 파시즘 몰락으로 이어진 1943년 총파업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노동자의 침묵을 무솔리니 본인이 명쾌하고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솔리니는 피아트 방문을 마치고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다음과 같이 내뱉었다고 한다.



"망할 놈의 도시!"


덧글

  • 에드워디안 2010/11/18 14:38 # 답글

    토리노에서의 저 일화는 유명하죠. 2차대전이 발발하기도 전에, 이미 파시즘 체제의 근간이 흔들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봅니다. 심지어 무솔리니 본인조차 1940년에 이런 말을 했었지요.

    "1914년 당시의 이탈리아인이 현재의 이탈리아인보다 뛰어났어."
  • 파리13구 2010/11/18 14:46 #

    ^ ^
  • 2010/11/18 17: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파리13구 2010/11/18 17:49 #

    네, 일본 메이지 시대, 태평양전쟁 시기의 애국부인회 관련 연구가

    번역된 것이 있는데, 소개글만 보니,

    일본 여성들이 파시즘에 동조한 것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도움이 되는, 페미니즘적 차원도 있었다는 지적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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