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전후 일본][특수위안부]
"1억엔으로 순결을 지킬 수 있다면"
한도 가즈코시의 <쇼와사>를 보니,
전후 일본의 재빠른 변신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키고 있다.
일본 변신의 가장 좋은 예(가장 나쁜 예)를 하나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특수 위안시설 설치는 연합군의 본토 주둔을 맞아, 일본 내무부가 18일에 꺼낸 책략이었다. 패전과 일본 여성의 수난에 대해, 당시 일본 지도부가 진지하게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즉 양가집 규수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그 방파제 역할을 하기 위해 주둔군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특수 위안부 시설을 만들기로 결의한 것이다. 이렇게 특수위안시설협희가 급조되어, 위안부를 모집하게 된다. 이는 바로 종전 3일만의 이야기다.
"영업에 필요한 부녀자는 기생,공사 창부,여급,작부, 상습 밀매업자들로 우선 충당하기로 한다."
내무성의 하시모토 마사미 경보국장은 8월 18일, 각 부,현 지사들에게 점령군을 위한 서비스걸을 모집하라고 지시, 이에 각 경찰서장이 각종 수단을 다해, "국가를 위해 매춘을 알선해 달라"고 돌아다니며 부탁했다고 한다. 매춘을 단속해야 할 경찰이 매춘을 알선하고, 부탁하고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당시 특수위안시설협회의 이사였던, 야마시타 시게루는 <선데이 마이니치>의 1974년 9월 1일 호에서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고 한다.
"이케다 [그는 후에 총리가 된 이케타 하야토] 씨가 "얼마나 필요한가?"라고 질문을 하니, 당시 협회 부이사장 노모토 가 "1억엔 정도 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이케다가 "1억엔으로 순결을 지킬 수 있다면 싸다고 할 수 있군"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위안시설은 27일 도쿄 오타구의 오모리에서 개업하게 되었다. 개업일은 점령군의 1진이 본토에 상륙하는 날로 맞춘 것이라 한다. 당시 모집한 위안부는 1360명 이었다고 한다. [당시 점령군 1진 인원 대비, 위안부의모집 규모로 볼때, 당시 일본 지도부의 일반 여성의 순결에 대한 집착이 얼마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패배한 인간의 한심스러운 자세였고, 불과 얼마전까지 죽기살기로 싸우던 일본이 패배하자마자 지나칠 정도로 고분해졌다는 점에서 한심했다는 것이다.
덧글
그게 다 그양반들의 볼거없는 근현대사 때문입니다 'ㅅ'
※1850~1945(~현재?)까지 우익은 칼부림하고, 좌익은 박수치고....될 리가 없지배 'ㅅ';;;
패전으로 단숨에 고분고분해진 건 ... 뭐 애도 때리면 말을 들으니 이해는 가지만 확실히 보기에 좋아보이는 모습은 아니군요 ^^;
죄악시되지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