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탱주의 역사해석을 고발한다!"(1) 레지스탕스

 



[
프랑스]


[프랑스전투][비시체제][프랑스국가][페탱]


"비시가 기억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1940년의 프랑스 패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페탱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 당시의 프랑스 군대와 유사하게, 몰락중이었던 프랑스 말이다. 미국의 한 위대한 역사가의 혁신적인 분석을 소개한다.



프랑스 파리 - 월간 <역사> 20104월호 352


로버트 팩스턴


Robert Paxton



"우리는 22년전보다 더 약하고, 우리는 그 때만큼의 동맹군도 없다. 병사들도 너무 적었고, 무기도 부족하고, 동맹국도 줄었고, 이것들이 바로 우리 패배의 원인들이다." ; 우리가 패배한 원인은 해이해진 기강에 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정신이 희생정신으로 이룩했던 것을 무너뜨렸습니다." (각각 1940620일과 625일의 필립 페탱의 연설)


"프랑스인들은 부리나케 도망쳤다. 프랑스의 패배는 그 뿌리를 제3공화국 시절 동안 점점 뿌리를 내렸던 사기저하,풍기문란에서 찾을 수 있다...프랑스인들은 강력하게 요새화된 마지노선에서, 1차 세계대전식의 전쟁을 다시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니알 퍼거슨 ,하버드 대학 교수, 뉴욕 리뷰 오브 북스 관련 글 중에서, 20061130


1940년 프랑스 패배의 이유들에 대한 비시의 해석의 생명력은 정말 끈질기다. 이 페탱주의 해석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고, 프랑스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특히 영미권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페탱은 심지어, 의회가 자신에게 초헌법적 권한을 위임하기 이전부터, 이같은 그의 진단을 확립하고 있었다. 그의 해석은 매우 정치적이었다. 페탱 원수는 장군들을 패전 책임으로부터 면제시켜주기를 원했고 (, 공화주의자 가믈랭 만 예외로 함), 3공화국에 치명타를 가하기를 원했고, 이는 <민족 혁명>을 통해 그가 공화국을 전제적인 체제로 대체하기를 그가 원했기 때문이고, 이 체제하에서는 페탱은 프랑스라는 가치를 지키는 유일한 보호자가 될 것이었다.


프랑스 패배에 대한 페탱의 분석은 프랑스 사회 전체가 도덕적 붕괴 상태에 있었던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낚았다. 프랑스가 1919년 이래 점차 쇠락해졌다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명백한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몰락,타락의 수사학은 친근한 비유였었던 것이다. 이것은 페탱주의자들을 넘어서 확산되었던 어떤 믿음이었다. 이 논리는 마르크 블로크의 <기묘한 패배>에서도 등장하고 있고, 또한 앙리 드 몽테랑의 <6>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드골주의자들 조차도 당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고안해 나갔고, 그들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들은 전체적으로 볼때 저항적이었고, 도덕적으로 건전했지만, 진정한 문제는 의원내각제 체제에 있었다는 비난이 바로 드골주의판 프랑스 몰락원인이었던 것이다.


페탱식의 몰락 해석은 프랑스의 패배가 필연적이었다는 사고에 기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년동안 출간된 수많은 위대한 역사책들은 1918년 이후의 프랑스 역사를 치명적이었던, 어리석고,바보같고,어리없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 프랑스는 어떤 좋은 것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독일은 모든 면에서 더 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패배를 초래했었던 원인들의 위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원인이 중요했고, 어떤 원인이 부차적이었나를 고민해 보는 것!] 장기적으로 볼때, 1940년의 프랑스는 국외적이고, 과거로부터 유래했던, 질곡들에 직면했던 상황이었다 : 1930년대 대공황 동안의 투자 감소 ; 프랑스의 낮은 출생율, 그리고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의 심각한 인명손실로 인해 더욱 문제가 되었다 ; 주축국에 가담하기로 한 이탈리아의 결정 ; 독소불가침 조약 등. 이들 중에서, 출생율 저하를 제외하면, 이러한 난관들은 프랑스 사회의 상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프랑스가 1914년에 그랬던 것 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전쟁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을 뿐이다. 페탱 원수가 프랑스에게 동맹국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던 것만은 타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랑스가 직면하고 있었던 약점들이 곧, 전쟁에서 이미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의 보다 진지한 연구들은 전투 이전에 진행된 전투들을 분석하고 있다. 가령, 탈보트 임레이 Talbot Imlay <2차 세계대전을 위한 준비: 영국과 프랑스의 전략,정책 그리고 경제,1938-1940>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2003) 같은 뛰어난 연구를 보자. 이 연구에 따르면, 당시 프랑스가 전략,정책,경제라는 측면에서 다소 열세였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패배가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니라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덧글

  • BeNihill 2010/10/25 14:37 # 답글

    일단 병사도 적고 무기도 부족하고 드립에서 독일 총참모부 작전담당과 인사담당, 군수담당이 서로 멍하니 얼굴을 쳐다보고 동맹국이 줄었다에서 독일 전사학과 연구진들이 조용히 책장을 덮고 눈물을 흘리겠군요...
    (그게 독일 앞에서 할 소리냐........)

    영미권이 패탱주의에 유독 호의적인 이유라면...확정할 순 없지만 아마 영미군사학계의 전격전 드립과 유사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독일이 잘했다고 말하긴 싫으니까'
    (전격전 드립이 '원래 우리네가 먼저 생각한건데 쟤네들이 그거 가져가서 잘 쓴거다'라는 식이라면 이 경우에는 '프랑스가 워낙 나라가 망해가는 판이라 털린거지 독일이 잘한 건 아냐'란 식의 뉘앙스가...)
  • BeNihill 2010/10/25 14:39 #

    첨언하자면 과거 독일 역사학계와 영국 역사학계는 '누가 로마의 정통성을 더 잘 승계했냐'를 놓고 키워를 벌인 역사도 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요..
    (근데 웃긴건 둘다 로마제국 시절엔 변방 끄트머리......)
  • 파리13구 2010/10/25 14:49 #

    ^ ^
  • Montcalm 2010/10/25 16:03 # 답글

    저는 어떤면에서 패탱이나 비시 정부 소속 사람들을 동정하기도 했습니다만 .. 파리13구님의 포스팅을보니 꼭 그런것만도 아니군요 .. 결국엔 자기들 이익이 더 중요했던 거랄까요?

    덧: 자주 애독하고있습니다 링크 추가해도 될까요?(굽신)
  • 파리13구 2010/10/25 16:08 #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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