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함락되다!"(2) 레지스탕스

"파리가 함락되다!"(1)



 

<군사적 결정>


가믈랭 후임으로 프랑스군 총사령관이 된 베강 장군이 수도 파리를 방어하기 위한 최후 방어선이라 설정했던 방어선이 1940611일에 돌파당했다. 바로 그날, 베강은 프랑스 총리에게, 파리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고, <무방비 도시>가 될 것이라 통고했다. 전쟁협약에서, 무방비 도시란, 공격자가 저항없이 도시를 인수한다는 것이고,이에따라 민간인들은 피해를 입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1년전부터 고안되었던 파리 방위 계획은 폐기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이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99월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다. 당시 폴란드인들은 바르샤바를 방어하기 위해 분투 중이었만, 폴란드인들은 도시의 중요 지역들의 파괴를 가져온, 독일공군의 가공할 폭격을 감당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당시 관련 뉴스들은 독일이 가진 파괴적인 힘을 보여주는, 공격에 의한 참화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파리에서 저항하는 것은 파리의 유산들과 시민들을 위헙에 빠트릴 것으로 보였다. 물론 각종 박물관들의 유물들은, 특히 루브르 박물관의 유물들은 약탈을 방지하하기 위해 이미 지방의 관련 시설로 이전이 완료된 상태였다. 하지만 베강 장군은 수도를 지키는 것이 어떤 전략적 이점도 없다고 판단했다. 전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어떠한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파멸만 초래하는 저항을 한들 무슨 소용이냐는 판단이었다.


신문들과 소문들은 당시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870(보불전쟁) 1914년 때처럼, 독일은 그들이 지나가는 어디에서든 약탈을 자행했다. 몇몇 언론은 학살을 촉구하는 히틀러의 연설문을 인용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65일부터, 많은 가족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지방으로 대피시켰다. 그리고 69일 이후, 이 분위기가 대세가 되었다.


611, 파리가 저항없이 함락될 것이라는 사실이 공표되자, 공황상황이 발생했다. 피난이 선택필수 사항이 되었다. 각 역들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특히 오스테리츠 역이 혼잡했다. 열차 특별편 편성이 잦아졌다. 여성들과 아이들이 우선적으로 열차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미, 파리의 주요관문인, 포르트 디탈리 와 포르트 도를레앙은 난민들로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독일군의 진격에 따른, 프랑스 북동부 출신 난민들도 이곳으로 몰려서, 혼잡은 더욱 가중되었다.


612,13일에, 광란상태는 그 정점에 도달했다. 열차들도, 역들도 질식할 지경이었다. 모든 종류의 차량들이 포르트 도를레앙을 통과하기 위해서, 6시간이 걸렸다 : 손수레들로부터 군인들을 실은 군대 트럭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철도원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프랑스철도청은 이미 철도청 소속 직원들과 가족들의 피난을 완료시켰던 것이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그들은 버스와 트럭을 타고 이미 피난을 했고, 이는 난리 중 철도업무가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다면, 당시 얼마나 많은 파리 사람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떠났을까? 이것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명백히, 수도 와 그 변두리 인구의 2/3가 피난길을 떠났다. 즉 대략 200만명의 여성,남성,아이들이었다. 그들이 길을 가득 채우면서, 당시 프랑스군이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필요하던 도로를 막았던 것이다.


이윽고, 파리의 분위기는 급격히 변했다. 도로관리국 서비스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거리들이 더 이상 청소되지 않았다. 당시 버려진 유모차들은 한 유명한 소련 영화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함 포템킨에 나오는 그 유명한 유모차 장면). 찢겨진 신문지 조각들이 쓰레기통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당시에 잠시동안 비도 내리지 않아서, 먼지들이 여만 갔다.




덧글

  • BeNihill 2010/10/24 09:39 # 답글

    한 두달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을 상상도 못했던 만큼
    (보불전쟁이 있었으니 경험이 없는건 아니겠지만 노인들 외엔 그걸 실제로 겪었던 사람은 없었을테니)

    사람들이 느껴야 했던 충격과 여러 감정의 폭과 두께는...어휴.
    (유사한 사례로 한국전쟁 당시 서울함락이 있었겠지만 제가 그걸 실제로 겪은게 아니니)
  • 파리13구 2010/10/24 09:47 #

    그렇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0/10/24 10:53 #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대인 만큼, 노인들 중에서도 보불전쟁을 겪은 이는 매우 드물었을 겁니다...
  • 행인1 2010/10/24 09:59 # 답글

    갑작스럽게 닥친 엄청난 대혼란이었겠군요.
  • 파리13구 2010/10/24 10:08 #

    네, 난리였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0/10/24 10:58 # 답글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씩이나 수도를 야만족이라 생각하던 놈들에게 점령당했으니, 치욕도 보통 치욕이 아니죠. 정작 프랑스군이 베를린을 점령한 것은 나폴레옹 시절의 단 한 번뿐...

    덧붙여 말하자면 1차대전 말기에 프랑스군 사령부는 독일 본토로 진격해 베를린을 함락시킨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더 이상의 진격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독일의 항복을 받는 선에서 전쟁이 끝나고 말았죠.
  • 파리13구 2010/10/24 11:10 #

    그렇군요...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군이 베를린 일부를 점령하지 않았나요?
  • 에드워디안 2010/10/24 11:20 #

    제가 말한 건 '완전한 점령'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 파리13구 2010/10/24 11:23 #

    알겠습니다...
  • 소시민 2010/10/24 13:22 # 답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되지만 만일 서울이 적에게 함락될 위기에 처한다면...

    피난민들의 이동만 해도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겠군요.
  • 파리13구 2010/10/24 13:29 #

    아마도, 정부가 관련 대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 deokbusin 2010/10/25 07:53 #

    솔직히 말해서 대책 따위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피난을 못가게 막는 것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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