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함락되다!"(1) 레지스탕스

<사진- 파리 개선문위의 독일군들>
 


파리
, 무방비 도시


1940614, 아침 5, 독일군 선발대가 파리에 입성했고, 프랑스 당국은 저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의 이야기들.


프랑스 파리 - 월간 <역사> 20104월호 352


파브리스 달메이라


Fabrice d'Almeira



1940614일의 파리함락은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경악은 2년 뒤, 마이클 커티스 감독이 연출하고, 험프리 보가트 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카사블랑카>에서도 유럽이 야만에게 굴복한, 치명적인 순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무방비 도시, 파리의 이미지는 점령군 병사들의 행진, 그들에 의한 주요 지점들의 점령 그리고 개선문 무명용사의 묘에 참배한 후 있었던 독일군의 샹제리제 거리 행진 등에서 확인되고, 당시 무명용사의 묘 관리인은 추모 불꽃을 꺼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었고,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의 묘를 이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주저하고 있었다.


19406, 파리 사람들은 패배앞에서 당황했고, 이는 한달 전까지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것 이었고, 그들의 뇌리속에는 아직도 독일군의 준비부족 과 장비의 허술함을 조롱하는 프랑스 신문들 기사들이 남아있었다. <가짜 전쟁>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선전은 도가 지나쳤고, 5월에 독일의 전격전 공세가 초래한 현실의 급박함을 은폐하고 있었던 것이다. 69일부터, 정부는 피난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모든 정부기관의 이전을 계획했다. 이러한 중앙 정부의 피난 준비가 완전히 은밀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은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언론도 신문 발행을 계속하기 위해서 남아야 하는지 아니면 떠나야 하는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가령, 라자레프 와 프로보스트가 운영하던 <파리-스와르> Paris-soir 지는 직원들을 프로방스로 파견했지만, 파리에도 일부 직원을 남겨두어, 그들에게 신문발행에 관한 권한을 백지위임했다. 이 신문은 1940610일 이후에도 계속 발행한 유일한 일간지가 되었다.




덧글

  • 에드워디안 2010/10/23 17:55 # 답글

    1871년의 악몽이 다시 재현된 순간이었죠...
  • 파리13구 2010/10/24 08:05 #

    그렇습니다...
  • BeNihill 2010/10/23 19:42 # 답글

    홉스봄 교수님의 한마디가 생각나네요.

    '유화주의자들은 틀렸고, 처칠은 히틀러와의 타협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에서만 옳았다.'

    당시 파리시민들은 히틀러의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으며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P.S. 저 말에서 제가 프랑스의 실책 < 독일의 특수함 을 지지하는 이유가 어느정도 담겨있겠네요.
  • 파리13구 2010/10/24 08:06 #

    나치 독일의 특수함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는 지당한 말씀입니다...
  • 까마귀옹 2010/10/23 20:30 # 답글

    '파리 함락'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은 역시 히틀러의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파리 정ㅋ벅ㅋ 인증'사진 아닐까요.
  • 파리13구 2010/10/24 08:07 #

    네, 슈페어의 회고록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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