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지마 류조,일본 패전의 경위는? Le monde

역사의 침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제 다시 일본이 개전에 이르게 된 경위를 살펴보자.

첫째, 국운발전의 속도를 단호히 늦추어 만주국 건설의 범위에서 만족했어야 했다.

중일전쟁은 일으키지 말았어야 했다.

둘때, 1941년 6월, 미국이 일본의 해외자산 동결조치를 취할 정세에 도달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3국동맹 체결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1939년 가을 유럽전쟁이 발발한 후, 세계의 열강을 주의 깊게 통찰하여, 점령지로부터의 철수와 같은 중일전쟁의 대승적 해결을 단행했어야 했다.

셋째, 1941년 10월, 도조 내각이 성립되었을 때,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미일교섭은 화전 양자택일의 정세에 이르렀다. 그때 난국을 헤치고 삼국동맹을 폐기하여 만주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철병했어야 했다. 다만 이러한 결단은 국내적으로 군을 포함하는 큰 문제가 되고, 또한 미국이 응낙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점은 지적된다.


- 세지마 류조.



-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

아마도 이 글은 일본어로 작성되었을 것이다. ^ ^

- 이 글에서 류조가 제기하는 대안은 1941년 11월, 미국의 <헐 노트>에서 제안했던 것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미국이 이를 응낙했을 가능성은 컸다고 본다,

다만, 당시 일본제국의 어떤 정치세력도 이런 대안을 군부에게 강압할 수 없었다고 본다.

천황 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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