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이 china 를 번역하는 법은? ^ ^ Le monde

1941년 11월 27일 ,미국 과 일본간의 위기가 최고조였던 그때,

일본정부는 미국 국무장관, 코델 헐이 보낸, 이른바 <헐 노트>를 수령한다.

그리고 이 문서의 요구사항에 놀라고 격분한 일본은 대영미 전쟁을 결심하게 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한가지 알 수 없는 점은,

<헐 노트>가 번역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겠다.

물론 <헐 노트> 원본이 영어임이 분명하지만,

그 일본어 번역을 미국이 했는지, 일본이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글이 관심이 가지는 것은 제목과 같다.


일본을 격분하게 만든, 일본의 대미 제안에 대한 미국의 최종답변인 이 문서의 1조는 다음과 같았다.

"1. 중국 및 인도차이나(베트남)에서 일본군과 경찰의 완전 철군"


만약, 도쿄가 이 1조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본래 말을 도무지 안듣는, 관동군이 이를 수용할리 만무했다.

이 1조를 해석한 일본에게, 이것은 일본제국에게 러일전쟁 시절의 제국으로 돌아가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하지만, 문제는 단어 <중국>이었다. 

물론 차이나가 중국이라는 것은 요즘 초등학생도 아는 것이지만,

외교관 이라면 이 <중국>을 신중하게 번역했어야 했다.


원래 코델 헐이 의도한 <중국>에서, <만주>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문서상의 중국은 만주국을 제외한 <중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일본이 이 1조를 신중하게 번역했다면,

이는 미국과의 협상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이 만주에서의 일본의 이해를 보장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 번역만 제대로 했다면,

최대로, 태평양전쟁이 없었을 수도 있고, 최소한 개전이 연기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

게다가, 북태평양의 겨울 기상조건을 고려한다면, 당시 협상이 잠깐만 길어졌다면,

개전은 자동적으로 다음해 봄으로 연기될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에 필요했던 외교관은 차이나를 <중국>이라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차이나가 <중국>인지 아니면, <만주국>을 포함한 중국인지 혹은 <만주국>을 제외한 중국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외교관이었다고 본다.


외교에서는 <단어>하나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이 되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덧글

  • 재팔 2010/10/19 17:36 # 답글

    요시다 유타카의 경우에는 그의 저서에서 일본 외무성이 중국을 만주까지 포함하느냐를 알아보지 않은 과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ㅎㅎ
  • 파리13구 2010/10/19 17:38 #

    그렇군요...
  • 냐로 2010/10/22 19:52 # 삭제 답글

    반대로 생각하면...
    당시 일본인들도 대체로 만주가 중국이라는 상식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자기네들이 만주국을 세워놓구서는.
  • 파리13구 2010/10/22 19:55 #

    모순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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