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탱,"프랑스 패배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1940년 6월 20일 레지스탕스


전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폴 레노 총리가 1940년 6월 16일 사임하고,
휴전파를 대표해서 총리가 된 페탱은 이 라디오 연설을 통해, 프랑스 전투 패배의 원인을 프랑스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페탱 원수

라디오 연설 - 1940620


패배 와 휴전


프랑스인이여! 나는 우리 적들에게 적대행위들을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프랑스 정부는 수요일에 적이 제시한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열어놓은 상황이다.


나는 한 군인의 심정을 가지고, 이번의 가혹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군사적 상황이 그럴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솜므 와 애스네 방어선에서 저항하기를 희망했었다. 이를 위해 베강 장군이 우리 군을 재정비한 바 있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승리의 조짐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방어선이 돌파당했고, 이에 따른 적의 진격으로 우리 군대는 후퇴해야만 했다.


1940613일부터, 휴전 요구가 거역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 실패가 여러분을 놀라게 만들었다. 1914년과 1918년을 기억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그 이유들을 알고 싶을 것이다. 나는 바로 그것들을 여러분에게 해명하려 한다.


Maréchal Pétain.

Discours radiodiffusé du 20 juin 1940.


La défaite et l'armistice


« Français ! J’ai demandé à nos adversaires de mettre fin aux hostilités. Le Gouvernement a désigné mercredi les pléni potentiaires chargés de recueillir leurs conditions.


J’ai pris cette décision dure au coeur d’un soldat, parce que la situation militaire l’imposait. Nous espérions résister sur la ligne de la Somme et de l'Aisne. Le Général Weygand avait regroupé nos forces. Son nom seul présageait la victoire. Pourtant la ligne a cédé et la pression ennemie a contraint nos troupes à la retraite.


Dès le 13 juin, la demande d’armistice était inévitable. Cet échec vous a surpris. Vous souvenant de 1914 et de 1918, vous en cherchez les raisons. Je vais vous les dire.


Le 1er mai 1917, nous avions encore 3.280.000 hommes aux armées, malgré trois ans de combats meurtriers. À la veille de la bataille actuelle, nous en avions 500.000 de moins. En mai 1918, nous avions 85 divisions britanniques ; en mai 1940, il n'y en avait que 10. En 1918, nous avions avec nous les 58 divisions italiennes et les 42 divisions américaines. L'infériorité de notre matériel a été plus grande encore que celle de nos effectifs. L'aviation française a livré à un contre six ses combats. Moins forts qu'il y a vingt-deux ans, nous avions aussi moins d'amis. Trop peu d'enfants, trop peu d'armes, trop peu d'alliés, voilà les causes de notre défaite.


191751, 우리는 328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고, 유혈 전투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현재 전투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50만 병력만 남아있다. 19185, 우리에게는 영국군 85개 사단이 있었다 ; 19405, 영국군 10개사단 만이 있을 뿐이다. 1918년에, 우리에게는 이탈리아군 58개 사단 과 미군 42개 사단이 있었다. 우리는 병력보다 더 심각하게 취약한 것은 바로 우리의 전쟁물자 였다. 프랑스 공군은 공중전에서 1:6의 전투를 해야만 했다. 우리는 22년전보다 더 약하고, 우리는 그 때만큼의 동맹군도 없다. 병사들도 너무 적었고, 무기도 부족하고, 동맹국도 줄었고, 이것들이 바로 우리 패배의 원인들이다.


Le peuple français ne conteste pas ses échecs. Tous les peuples ont connu tour à tour des succès et des revers. C'est par la manière dont ils réagissent qu'ils se montrent faibles ou grands. Nous tirerons la leçon des batailles perdues. Depuis la victoire, l'esprit de jouissance l'a emporté sur l'esprit de sacrifice. On a revendiqué plus qu'on a servi. On a voulu épargner l'effort ; on rencontre aujourd'hui le malheur.


진정한 프랑스 국민은 이번 실패들에 항의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 국민들이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나라 국민들이 약점들 혹은 뛰어난 점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도 패배한 전쟁에서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도취감이 희생정신을 질식시켰다. 우리는 더이상 봉사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노력을 게을리 했고, 우리가 오늘 지금의 불행을 맞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J'ai été avec vous dans les jours glorieux. Chef du Gouvernement, je suis et resterai avec vous dans les jours sombres. Soyez à mes côtés. Le combat reste le même. Il s'agit de la France, de son sol, de ses fils.


나는 우리가 영광스러웠던 그 날들에 여러분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정부의 대표로, 나는 이 시련의 나날들을 여러분과 함께 있고, 함께할 것이다. 부디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전투는 같은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 와 프랑스 국토 그리고 프랑스의 자식들을 위한 전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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