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6월,프랑스 패배는 필연적이었나?" 레지스탕스



 

1940년의 프랑스


프랑스전투 패배에 대한 면밀한 검토


"독일의 승리는 필연적이었나?"



프랑스 파리 - 월간 <역사> 20104월호 352



사설


"정신적 충격"



19406월의 패배가 프랑스인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까? 당시 프랑스인들은 일년전까지 세계 최고의 군대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프랑스군이 단지 6주만에 패배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페탱 원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면서, 장군들과 군사전략에 쏠린 비난의 화살을 꺽는데 성공했다 : 그에 따르면, 프랑스의 군사적 패배는 군대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그것은 바로 과거의 정치 체제의 탓으로, 군대에 필요한 물자와 장비를 제공해 주지 않았던, 레옹 블룸 과 인민 전선 정치가 바로 패배의 진정한 원인이었다는 주장이었다. 늙은 원수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 승전 이후,쾌락주의가 희생정신을 질식시켰다!"


하지만, 외국 역사가들의 연구를 출발로해서, 역사가들은 이같은 주장이 편파적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 잡지의 이번호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패배는 전혀 필연적이지 않았다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이같은 혼란을 강조하는 설명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940710일 의회주의 체제를 스스로 파괴하고 출범한, 비시 체제, 그 라디오. 그 언론 등은 일제히 프랑스인들에게 참회할 것을 강요하고 나섰고, 사회의 <기강해이>, 모든 형태의 정신활동의 마비, 물질만능주의, 가족을 파괴한 개인주의 등 에 환멸을 나타냈고, 분파주의,정당의 난립,게으름,도덕적 해이 그리고 저질 문학, 그리고 학교의 중립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중립은 없다는 주장), 순전히 탁상공론에 불과한 사이비 문화 등을 맹공한 바 있다. ... 이상의 요인들이 바로 프랑스 패배의 근본적 원인들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군대는 어떠했다는 것인가? 이것이 바로 페탱 체제의 속임수였고, 체제는 군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페탱의 편에서, 종교당국도 신자들에게 <죄의 고백 mes culpa>을 강요하고 나섰다.: 당시의 가톨릭계 일간지 <라 크루아>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는 것으로 시작하자." 고위성직자들의 시각에서, 패배는 종교에 대한 무관심, 탈기독교화 탓이었다 : "지나친 신성모독적 언사들, 충분하지 못한 기도들. 지나친 도덕불감증 그리고 충분하지 못한 회개. 언젠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대가를 치를 날이 올 것이다." 이는 페탱과 유사한 상황인식이었고, 이러한 종교적 선전선동은 결과적으로 페탱 원수님이 프랑스를 구원하셔야만 한다는, 우상숭배적 유사종교로 변질되었다. 이는 무장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좋은 전통들로의 회귀 와 나쁜 악마들 사냥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 악마들이란, 유대인, 프리메이슨,공산주의자, 학교 교사 그리고 노조 지도부 였다.


이렇게 패배의 파장이 비시 체제를 살아남게 만들었던 것이다. 프랑스는 더 이상 세계 제1의 강대국이 아니였고, 이는 샤를 드골이 아직도 그렇다고 프랑스인들에게 믿게 만들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1940년의 6주는 프랑스 정신의 균열을 만들었고, 그 균열의 파장은 바로 오늘날까지 감지될 수 있는 것이며, 이 특징은 집단적 믿음의 상실,그리고 유럽의 각종 여론조사들이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는 염세주의다. 그리고 1940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들이 이 40년의 정신을 강화시켰고, 즉 나치독일에 대한 협력, 식민지 전쟁들, 디엔비엔푸 그리고 알제리 프랑스의 상실 등이 바로 그 사건들이었다. 이렇게, 프랑스의 집단적 심리의 급변은 바로 믿을 수 없는 1940년의 6주동안 태동한 것이며, 그것은 바로 붕괴된 프랑스군의 방어선, 프랑스의 모든 길들이 피난가족들로 혼잡했던 시간 그리고 독일-프랑스 휴전협정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다.


프랑스인들이여, 우리는 모두 1940년에 태어났다.



월간 <역사> 편집장.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0/10/16 10:26 # 답글

    『전격전의 전설』이라는 책을 보시면 제 2차 세계대전 프랑스 전역당시 일반적 인식이 확 깨지고 맙니다. 저도 군 복무시절 책을 신청해서 오길래 읽어봤더니 확 깨더군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필연이 아닌 우연에 우연이 겹친데다가 프랑스군의 실수와 무능이 독일군보다 더 컸던 탓이지요.
  • 파리13구 2010/10/16 10:34 #

    네, 위에서 소개한 잡지 특집호 기사들은

    프랑스군의 취약성,무능,실수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과장은 페탱의 프랑스전투 패배 분석 논리를 아직도 그대로 수용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합니다. 신화라는 것이죠...

    기회가 되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행인1 2010/10/16 12:29 # 답글

    사실 당시 전차와 전투기의 보유 숫자는 프랑스군이 전혀 독일군에 꿀리지 않았지요. 다만 운용방법이 엉망진창이어서 그렇지.(겸하여 전차에 무전기도 없었고...)

    그리고 페텡의 저런 모습을 보고나니 거참...
  • 파리13구 2010/10/16 12:33 #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 ArchDuke 2010/10/16 14:53 # 답글

    독일군도......삽질은 많이 했지요. 하지만......싶기도하고

    나치독일에 대한 협력, 식민지 전쟁들, 디엔비엔푸 그리고 알제리 프랑스의 상실 등이 바로 그 사건들이었다-----------여기서 식민지를 잃은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게 극우파의 시선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제가 잘못 읽은지는 몰라도)
  • 파리13구 2010/10/16 15:02 #

    식민지 상실을 아쉬어 한다고 보기 보다는,

    그 상실이 프랑스인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0/10/17 18:10 # 답글

    가믈랭 장군을 비롯한 프랑스군 사령부의 상황이 한 마디로 '개판 5분전'이었던 것이, 프랑스가 참패한 가장 큰 원인이였죠. 아무리 막강한 군대와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해도, 지도부가 무능하면 말짱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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