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불가침조약 과 일본... ^ ^ Le monde



1939년 일본은 노몬한 사건을 통해 몽고,만주국 국경에서 소련에게 군사적으로 패배했다면,

같은 해, 8월 23일의 독소불가침 조약 체결소식은 독일에게 외교적으로 배신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미 오래전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한 일본에게, 소련과는 군사적 원수상태, 독일은 배신자이고,

중국과도 소련에 못지않은 군사적 충돌 상황 이었고,

여기에 미국 마저 1939년 7월 27일 <미일 통상항해조약>의 일방적 폐기를 통고함을 통해,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좋은 시절은 이제 끝이라고 통보해온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은 그야말로, 국제적 고립, 외교적 고독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소불가침 조약 채결 소식이 알려진 것은 바로 이같은 일본의 고립무원 상황에서 였다. ^ ^

만약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당시 일본작가였다면, 일본판  <100년 동안의 고독>을 집필했을 것이다. ㅋㅋ..

일본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상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당시 노몬한에서 소련과 군사적 충돌이 한창이었던 일본은

대소련전에서 유리한 전략을 위해, 독일과의 군사동맹을 적극 검토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독일이 소련과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8월 21일 밤 독일의 리벤트로프 외무부 장관이 주독 일본대사인 오시마 히로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실은 소련이 영불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어, 독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삼국동맹의 조기체결이라는 우리 요구에 일본은 반년이나 침묵한 바 있다. 따라서 독일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소."

이에 오시마 대사는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하다가, 간단히 한마디 했다고 한다. "독일의 이번 행동은 독일과 일본의 반공협정 위반이다. 이에 엄중히 항의하는 바다."


이 독소불가침 조약 소식은 일본에 "놀라움, 당황,분함,원통"으로 받아들여 졌다.

이에 따라, 히라누마 내각이 총사퇴했다. 총리대신의 퇴임의 변은 다음과 같았다. "유럽 천지는 복잡기괴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낸다."


당시 일본이 독일에게 느꼈던 배신감은 나가이 가후의 일기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다음 날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한다.


"9월 2일... 이날 신문은 독일과 폴란드 양국의 개전 기사를 실었다.

쇼팽 과 시엔키에비치의 조국[폴란드]에 승리의 영광이 있기를..."  ^ ^


덧글

  • 재팔 2010/10/13 19:54 # 답글

    그리고 그 뒤에 독일은 이번엔 소련을 치고, 소련과 독일의 동맹에 끼려고 했던 마츠오카 외상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가지요 ㅋㅋ
  • 파리13구 2010/10/13 19:57 #

    ^ ^
  • 행인1 2010/10/13 23:19 # 답글

    어떻게 외교를 하면 미, 소, 독과 한꺼번에 척을 질 수 있는건지...
  • 파리13구 2010/10/15 08:32 #

    따라서 당시 일본을 <막장>이라고 부릅니다. ^ ^
  • 와우 2012/01/09 23:34 # 삭제 답글

    정말 일본 존경해야겟음 어떻게 그때당시의 초강대국들을적으로 만들다니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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