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유서, 1939년... Le monde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유서



죽음으로 국가에 보답하는 것은 원래 무인의 자랑이다. 결코 전장인지 총구 앞인지 묻지 않는다.


용전분투하는 전장에서 화려하게 지는 것은 쉽다.


일관되게 성실하며 속론 俗論 을 배척하고 쓰러지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원한 천황의 은혜, 유구한 황국,


군국 백년의 계획을 생각해야 한다.


일신의 영욕생사를 논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붉은 빛은 윤을 내야지 색을 빼앗으면 안되고,


난은 돌보야야지 향기를 빼앗으면 안된다.


내 몸은 죽일 수 있지만, 내 의지를 빼앗을 수 없다.



쇼와14년 1939년 5월 31일


야마모토 이소로쿠



- 한글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전쟁을 반대했던 군인이라 소개되어 있다.


그는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육군 강경파로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렇게 유서까지 썼을 정도였다면 , 정말 심각했던 모양이고,

해군도 이 문제로, 한때 육군과 전투를 벌일 준비까지 했다고 한다.




덧글

  • LVP 2010/10/13 16:07 # 답글

    그야 일본군은 군대가 아니라 조직폭력배니까요 'ㅅ'

    사실 1929년때도 미국과 전쟁얘기가 솔솔 나오던 때였으니...단체로 염통이 부었던 겝니다.
    ※간이야 이미 너무 부어서 간경화로 진행됬고...'ㅛ';;;;;
  • 파리13구 2010/10/13 16:12 #

    막장 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 ^
  • 초록불 2010/10/13 16:15 # 답글

    이렇게 적으니까 이때 죽은 것 같습니다...^^

    태평양 전쟁 때 죽었지요?
  • 파리13구 2010/10/13 16:16 #

    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 중인 1943년 4월 18일에 사망했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0/10/17 19:05 #

    솔로몬 섬을 순시하던 중 첩보를 입수한 미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는데, 할지 제독이 루스벨트에게 '족제비(야마모토)를 날려버렸다'고 보고하자 루스벨트 왈,

    "그 악당을 사슬에 묶어 백악관까지 끌고 오고 싶었다!"
  • ArchDuke 2010/10/13 17:54 # 답글

    ㄱ- 육군 녀석들은 자기가 싸우는것도 아니면서...
    다행이 격추 당하셔서 숙청도 전범 재판소도 안 갔군요
  • 파리13구 2010/10/13 18:21 #

    불행 중 다행이군요....
  • 재팔 2010/10/13 19:58 # 답글

    그런데 아시아-태평양전쟁 개전에는 육군도 반대한 사람들도 있습니다(일단 A급 전범으로 교수형당한 무토 아키라를 비롯해서-_-;;). 저 양반도 전쟁 반대 때문에 좀 미화된 감이 있지요.ㅎㅎ
  • 파리13구 2010/10/13 20:00 #

    그렇군요...
  • 2010/10/13 20: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파리13구 2010/10/13 21:08 #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 주코프 2010/10/14 00:18 # 답글

    야마모토는 사관시절 국가의 존망을 건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있는 메이지 시대의 최후세대이기에 폭주하는 군부가 발호하는 쇼와시대에 이미 절망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많지요..
  • 파리13구 2010/10/15 08:34 #

    그 절망에 저도 부분적으로 공감합니다.
  • deokbusin 2010/10/15 10:01 # 삭제 답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일본해군내에서 좌파이자 군축조약의 유지를 주장하고 대미개전을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긴 한데, 실상을 알게 되면 실망하게 되기 십상입니다.


    군축조약의 유지를 주장했다고 하지만, 미영대비 7할의 해군전력을 가장 강경하게 주장한 사람이었고(그 과정에서 대장성의 관료에게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대미전쟁을 반대했다지만 의외로 함대파의 대부인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의 대미전쟁관-미국과의 화평은 끝까지 추구해야 하지만, 미국이 화평을 거절하면 단기결전으로 끝내야 한다-과 유사한 대미전쟁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덤으로 도박을 좋아하는 나머지 국가의 명운을 거는 전쟁조차 도박의 기분으로 한다는 비아냥도 있으며, 항공전력의 우세를 주장했다면서도 정작 그것을 어떻게 운용할 지에 대해서는 대함거포주의와 별로 다를 바 없었으며, 인사에 있어서는 연공서열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적재적소의 인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문제점을 지적하면 끝도 없습니다.

    1948년에 사무엘 모리슨이 바보같은 제독이라고 혹평한 것이나 여러 연구자들이 야마모토의 능력을 범장 혹은 바보장군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다 그만한 근거가 있는 법이죠. 본문의 유서는 야마모토가 평생의 직장이라고 생각했던 해군성의 군정근무에서 쫓겨날 지경이 될 무렵에 작성한 것이라, 비아냥조로 보면 해군성의 책상근무에서 쫓겨나 낙동강 오리알이 될 것 같으니까 분풀이로 쓴 거 아니냐?는 의심조차 나올 지경입니다. 사실 야마모토는 함대전투지휘 보다는 육상에서의 서류처리에 더 유능했기 때문에 그를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전보한 것은 인사실책이라고 해도 지나친 건 아닐 겁니다.


    그리고 함대파의 대부인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도 야마모토와 마찬가지로 츠시마 해전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입니다. 또한 강경한 조약파이자 해군좌파 삼인방 중 한 명인 이노우에 시게요시를 다른 조약파들이 숙청되는 마당에도 확실하게 주장하는 그의 강경한 성격을 높이 사서 계속 해군에 남겨 놓았습니다(그리고 이노우에는 대장 계급까지 진급하죠). 이노우에의 경우로 볼 때 요나이나 야마모토 모두 후시미노미야와 뭔가 공통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해군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봅니다.
  • 파리13구 2010/10/15 10:37 #

    그렇군요...
  • 에드워디안 2010/10/17 19:10 #

    겁도 없이 황족에게 덤빈 이노우에야말로, 진정한 강심장의 소유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걸 너그럽게(?) 받아준 후시미노미야도 대단하긴 마찬가지...
  • 이소로꾸 평가는 2013/09/06 15:34 # 삭제

    48년 쓰여진 모리슨의 야마모토 평가는 믿을게 못됩니다. 사실 전쟁 끝난지 몇년되지 않은 상태에서 패전지장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가령 그의 인재활용면에서 보년 인사권한이 함대사령관에게도 있지만 실권은 해군군령부에 있던 상태였고, 반대 의견은 내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일사분란히 움직이는 서양인에 비해, 관철되지 않은 반대 의견을 가슴에 묻은채 본래작전 까지 왜곡하는 일본군 사령관들을 그의 책임으로 돌리는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다만, 그가 반전을 외치면서, 기습공격을 기획하고, 해군력 증강을 꽤했던 것은, 그가 반전주의자 이기 보다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반전은 제국해군이 서양해군에 양적질적으로 뒤쳐짐을 인정하는데서 오는 전쟁회피 주장이고, 피할수 없으면 기습으로 제압한다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식 사고방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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