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헬무트 크노헨 Helmut Knochen 레지스탕스

 


헬무트 크노헨


헬무트 크노헨은 (1910314- 200344) 2차세계대전 동안, 나치 친위대 스탄다르텐퓨러 (대령)신분으로, 프랑스에서 보안경찰 과 보안대 책임자였다. 그는 독일 점령당국의 반유대주의 정책, 특히 나치강제수용소로의 프랑스 유대인 강제이송에 깊이 간여했고, 수천명의 프랑스 레지스탕스 처형에 책임이 있다.


Helmut Knochen (14 mars 1910 - 4 avril 2003) fut pendant la Seconde Guerre mondiale Chef de la police de sûreté (SIPO) et du service de sécurité (SD) pour la France, avec rang de SS Standartenführer dans la hiérarchie SS (soit colonel). Il est impliqué dans la politique antisémite de l'occupant, notamment dans les déportations massives de Français juifs vers les camps de concentration, et s'est rendu responsable de l'exécution de plusieurs milliers de résistants français.



한국 위키페디아에서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크노헨은 1910,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교와 괴팅겐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영어를 공부하고, 괴팅겐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나치당 (NSDAP) 이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인 1932년에 나치당에 입당하였다. 1936년에 친위대에 입대하였으며,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이끄는 보안대 (SD) 의 행정부에 참여하였다.


1940, 프랑스 파리의 보안 경찰 및 보안대 사령관 (독일어: Befehlshaber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BdS) 에 임명되었고, 그는 부관 쿠르트 리슈카 (Kurt Lischka), 파리의 친위대 및 경찰 고급 지도자 (독일어: Höhere SS und Polizeiführer, HSSPF) 카를 오베르크 (Karl Oberg) 와 함께 나치 점령 하의 파리에 들어가 200,000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각지의 유대인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


전후인 19466, 크노헨은 영국의 군사 재판소로부터 영국인 비행기 조종사를 살해한 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형은 집행되지 않았고, 19477, 프랑스로 이송되었다. 프랑스에서 크노헨은, 195410월 파리에서 프랑스 군사 재판소에 의해 또 다시 사형 판결을 받았다. 1958년 판결에서는 종신형으로 감형되었고, 1962년에 샤를 드골의 사면에 따라 프랑스의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크노헨은 당초에 바덴바덴에 머물었으나, 그 후 클라우슈탈첼러펠트 (Clausthal-Zellerfeld) 근교의 하넨클레 (Hahnenklee) 로 자리를 옮겼다. 1963년 이후, 오펜바흐 암 마인 (Offenbach am Main) 에 거주하였으며, 보험 대리인으로 일하다가 은퇴하고, 2003년에 바덴바덴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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