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라발 체포 사건- 1940년 12월 13일. 레지스탕스

비시정부 초기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40년 12월 13일에 있었던

당시 부총리였던 피에르 라발 체포 사건이다.


피에르 라발은 페탱 보다 대독협력을 더 빨리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했고,

심지어 독일편에서, 영국에 대한 침공에 가담하려고 했다.

이는 비시 정부가 10월에 처칠의 영국 정부와 맺은 비밀 합의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이 합의에 따르면, 프랑스는 지중해에서의 독일의 활동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고, 

영국을 공격하지 않을 거이며, 또한 <자유 프랑스>에 가담한 프랑스 제국영토를 침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당시 독일 대사, 오토 아베츠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라발은 개인 행동을 했고, 

12월 15일로 예정된 페탱 원수의 파리 앵발리드 방문을 틈타서,

페탱이 파리에서 비시로 복귀하는 것을 막아서, 독일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찬탈하려는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런데,페탱이 이를 사전에 감지해서, 12월 13일에 피에르 라발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에, 라발이 파리에서 체포되어, 비시로 압송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독일 점령당국이 재빠르게 개입해서, 라발은 곧 석방되었다.

석방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이제서야 어디에서 나의 친구들을 찾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독일이다."


이 사건에 따라, 피에르 라발이 부총리에서 물러나고,

12월 14일, 다를랑 제독이 부총리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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