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치독일이 영국을 점령했다면?" 레지스탕스

 


[역사]

[2차세계대전][독일강점기][대독협력][반유대주의][레지스탕스]


영국인들도 독일에 협력했을까?


그리고, 프랑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국인들도 만약 1940년에 독일에 점령당했더라면, 그들과 비슷하게 행동했을까 하고, 역사가이자 언론인인 막스 해스팅스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더 영웅적으로 저항했을까?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 - <가디언>지 보도


200654


HISTOIRE •

Les Britanniques auraient-ils collaboré ?


Et si, comme les Français, les Britanniques avaient été occupés en 1940, s’interroge l’historien et journaliste Max Hastings, auraient-ils plus héroïquement résisté ? Pas sûr…


04.05.2006 | Max Hastings | The Guardian



Suite française*, le roman d’Irène Némirovsky, triomphe en ce moment sur la liste des meilleures ventes de livres en Grande-Bretagne. Ce succès démontre qu’il y a lieu d’avoir foi dans le goût du public. Il est en effet très touchant que ce quasi-chef-d’œuvre connaisse le succès plus de soixante ans après que son auteur juif a péri à Auschwitz. Sa description de la France occupée en 1941 est d’autant plus terrifiante qu’elle est écrite avec générosité, non seulement à l’égard des Français, mais aussi des Allemands qui s’apprêtaient pourtant à l’assassiner.


이렌 네미로브스키의 소설 ,<프랑스 연작>이 최근 영국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이 성공은 영국 독자들이 이 시대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실제로, 거의 걸작에 준하는 작품이고, 매우 감동적이며, 그 유대계 여성작가가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한 지 60년만에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 책이 그리고 있는 1941년의 점령기 프랑스는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시각에서 볼때 관대하다기 보다는 매우 가공할 만한 것이고, 결국 그녀를 죽인 것은 바로 독일인들이었다.


Nombreux sont les Britanniques qui, lorsqu’ils lisent des ouvrages sur cette époque, ont du mal à ne pas se montrer méprisants. Les Français n’ont-ils pas jeté l’éponge en 1940 tandis que la Grande-Bretagne, elle, a continué de combattre jusqu’à la victoire ? De plus, la plupart ont collaboré avec les nazis, et ce sont des policiers français qui ont arrêté Irène Némirovsky pour l’envoyer vers les camps de la mort.


많은 영국인들이 이 시대에 관련된 서적들을 읽을 때,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을 억제하기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 결국 프랑스인들은 1940년에 항복했지만, 승리할 때까지 싸운 것은 바로 우리 영국인들이 아니었던가? 뿐만아니라, 많은 프랑스인들이 나치에 협력했고, 이렌 네미로브스키를 절멸수용소로 보내기 위해, 그녀를 체포한 것은 바로 프랑스 경찰이었다.


Suite française a redonné une actualité au débat sur le comportement d’une société sous occupation étrangère. Dans ces circonstances, les remarques d’Anthony Eden [ministre de la Guerre puis des Affaires étrangères dans le gouvernement d’unité nationale formé par Churchill en 1940] méritent d’être entendues. Dans Le Chagrin et la Pitié, le grand film de Marcel Ophuls sur la France de l’Occupation, il déclarait : “Il serait inconvenant, pour tout pays qui n’a jamais souffert de l’occupation, de juger un autre qui l’a vécue.” Voilà de sages propos.


<프랑스 연작>은 외국에 점령당한 한 사회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논쟁을 다시 점화시키고 있다. 바로 이같은 상황에 대해, 앤소니 이든의 지적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1940년 처칠이 구성한 전시내각에서 전쟁 장관과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점령기 프랑스를 그린, 마르셀 오퓔스의 명작 다큐영화, <슬픔 과 연민>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 전혀 점령의 고통을 당해보지 못한 국가가 다른 점령당한 국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 이것이야 말로 현명한 지적이다.


Car il est incroyablement difficile de résister à une tyrannie imposée sans merci, . Pour pouvoir manger et nourrir sa famille, il faut gagner de l’argent et le fonctionnement du commerce et de l’industrie dépend du bon vouloir des occupants. Le propriétaire d’une entreprise comprend qu’il ne peut pas faire d’affaires, que ses employés n’auront pas de travail, à moins d’accepter les conditions des nouvelles autorités. Une famille peut tout perdre si l’un de ses membres commet des actes de résistance, ou est seulement soupçonné de les avoir soutenus. Certains peuvent se sentir assez courageux pour supporter de telles conséquences, mais les feraient-ils subir à leurs enfants ?


왜냐하면, 무자비하게 통치하는 점령세력에 대해 저항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을만큼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고, 상업 과 산업의 운용을 위해서는 점령세력의 선의가 필요했다. 기업 소유주는 새로운 점령당국이 제시한 조건들을 수용하지 않는 한, 사업을 할 수도 없었고, 소속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가질 수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가족 구성원 중 한명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거나, 레지스탕스 활동을 지지한다고 의심만 받아도, 한 가족이 풍비박산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가족들은 이런 결과들을 감당할 정도로 용기가 있었지만, 자식들에게도 이로 인한 뒷감당을 하게 한다는 것은 가혹했던 것이다.


Dans les années 1930, nombre d’aristocrates britanniques en vue, comme leurs homologues français, ont peu à peu développé un sentiment de terreur face aux communistes. Les nazis les effrayaient moins – car ils ne menaçaient pas leurs intérêts – que les communistes qui voulaient s’en prendre à leurs biens. C’est ce qui s’est passé avec l’aristocratie française, qui a largement choisi la collaboration. On se rappelle, bien sûr, de quelques héroïques exceptions. Mais si l’on s’en souvient, c’est précisément parce qu’elles étaient rares.

Il est probable que leurs homologues britanniques auraient agi de même. Beaucoup de nobles britanniques ont courageusement combattu pendant la Seconde Guerre mondiale, mais je ne doute pas qu’ils se seraient soumis aux Allemands sous l’occupation.


1930년대에, 많은 저명한 영국 귀족들이, 프랑스 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점차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을 발전시켜 나갔다. 차라리 나치들이 그들을 덜 위협했고, 왜냐하면, 나치가 귀족의 이익을 위협하지는 않았기 때문이고, 반면,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귀족들에게 일어났던 일이고, 많은 귀족들이 협력을 선택했던 것이다. 물론 몇몇 영웅적인 예외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예외적인 것을 명심해야만 하는 이유는, 귀족의 저항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영국 귀족들도 프랑스 동료들처럼 행동했을 것이라 추정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물론 많은 영국 귀족들이 제2차세계대전 동안 용감하게 싸운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들이 독일 점령 상황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싸웠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La plupart des nantis français ont aussi collaboré, non par enthousiasme mais parce que cela était vécu comme une nécessité. Les classes bourgeoises se sont laissées convaincre par des arguments liés à la loi et à l’ordre, impératifs encore plus séduisants en temps de guerre qu’en temps de paix. La résistance, cantonnée à une petite minorité jusqu’en 1944, était donc dominée par ce que la classe moyenne : enseignants et syndicalistes (dont beaucoup de gauche), jeunes têtes brûlées, militants communistes, journalistes, agriculteurs. Autrement dit, des petites gens. Je pense que tout cela aurait été également vrai dans une Grande-Bretagne occupée par les Allemands.


많은 프랑스 부자들이 독일에 협력했던 것은, 열정 때문이었다기 보다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평화시 보다는 전쟁시에 , ,질서,명령과 관련있는 주장들에 현혹되기 마련이다. 1944년 이전까지, 작은 소수집단에 불과하던, 프랑스 레지스탕스는 따라서, 중산계급에 의해 주도되었다 : 교사들, 노동조합원 (대부분 좌빨), 가슴이 타오르는 청년들, 공산주의자들, 언론인들, 농민들 등.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은 소시민들이었다. 나는 만약 영국이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었다고 하더라도, 영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했을 것이라 본다.


Une autre question, plus épineuse, est de savoir si les Britanniques auraient envoyé les juifs à la mort, comme l’ont fait les Français. L’antisémitisme était très répandu dans la Grande-Bretagne de l’entre-deux-guerres. On souligne parfois que “la plus grande faveur que Hitler ait faite à la classe supérieure britannique est d’avoir ôté toute respectabilité à l’antisémitisme”. Les sentiments antijuifs des Britanniques étaient cependant moins virulents que ceux des Français. Et de ce côté-ci de la Manche, on se plaît à croire que la simple décence aurait empêché les gens ordinaires de dénoncer leurs voisins juifs, même si un gouvernement britannique collaborateur les y avait poussés.


더 까다로운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면, 그것은 바로, 영국인들이 프랑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을까라는 문제이다. 영국에서도 전간기 동안에, 반유대주의가 매우 유행했었다. 때로, 히틀러가 당시에 가장 존경했던 계급이 바로 영국 귀족들이고, 그들이 반유대주의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그랬다는 점이 강조된다. 하지만, 영국의 반유대주의는 프랑스와 비교한다면 덜 맹렬했다. 그리고 우리 영불해협 건너편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품위때문에, 우리 영국인들은 자신의 유대인 이웃을 고발하는 것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위안을 느낀다. 심지어 영국 대독협력 정부가 고발을 강제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En France, par contre, la Gestapo notait avec satisfaction que chaque matin, la boîte aux lettres de son quartier général parisien, l’hôtel Majestic, à deux pas de l’arc de Triomphe, était pleine à craquer de lettres anonymes de citoyens ordinaires s’accusant les uns les autres de marché noir ou d’activités subversives. On sait aujourd’hui que la plupart des agents britanniques faits prisonniers pendant l’Occupation ont été trahis par des Français. Les Britanniques se seraient-ils eux aussi retournés les uns contre les autres ? Nul n’est capable de répondre à une telle question mais, lorsqu’on veut juger le comportement d’une nation dans des circonstances qui ont été épargnées à la nôtre, il vaut mieux faire preuve d’une humilité comparable à celle d’Anthony Eden. Le formidable roman d’Irène Némirovsky brosse le portrait d’une société qui ne s’est pas conduite avec courage, honneur ou dignité. Mais, une fois encore, je doute que nous aurions fait mieux.


반대로, 프랑스에서 게쉬타포는 매일 아침에 만족감을 느꼈다. 즉 파리 개선문 근처의 마제스틱 호텔에 있었던, 게쉬타포 파리본부의 우체통에는 매일아침 보통사람들이 자신의 이웃을 고발하는 익명의 투서편지들로 가득했다고 하고, 이들은 서로를 암시장 거래 혹은 파괴전복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고발했다고 한다. 최근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독일강점기 동안 프랑스에서 활동 중이었던, 많은 영국 첩보원들의 체포는 프랑스인들의 배신때문이었다고 한다. 영국인들도 서로를 이처럼 고발했을까? 이러한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할 수는 없는 것이고, 물론 우리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기를 원하지만, 차라리 앤소니 이든의 현명한 발언 처럼, 이 문제에 대해 겸손한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아무튼, 이렌네미로브스키의 뛰어난 소설은 용기,영광,존엄이 결여되어있던, 한 사회의 초상화를 잘 그리고 있다. 하지만, 다시금 강조해야만 하는 것은, 나는 우리라고 이 보다 더 잘했을 것이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덧글

  • 미연시의REAL 2010/10/05 13:12 # 답글

    과연 영국의 점령필요성이 있었을까 싶군요. 우선적으로 1940년 프랑스전역에서 그때 뒹케르크의 철수작전에서의 독일군의 그 유명한 진격중지명령만 없었다면 당시 뒹케르크에 있었던 영국의 모든 육군 지상전력 자체는 송두리째 사라졌을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이 과연 영국을 침공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당장의 프랑스지역에 공군기지와 대규모 군수시설을 구축하고 협박으로 영국을 위협해도 영국 스스로 무너질 상황이 되어있었다는건 불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처칠정부가 영국본토가 무너지면 식민지에서라도 싸우겠다라는 결사항전을 보냈지만 뒹케르크 철수가 실패했다면 그 정부의 존립이 얼마나 가겠는가의 여부가 등장할수 밖에 없습니다. 영국이 2차대전때 의지를 보인이유는 바로 뒹케르크의 철수작전의 기적을 통해서 영국군의 핵심 전력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죠.
  • 미연시의REAL 2010/10/05 13:14 #

    사실상 유럽의 핵심지대라 할수 있는 서유럽이 독일에게 아예 넘어간 상황에서 영국의 전력도 완전 깡통이었다면.. 독일에게 오히려 평화협상제시하고 중립이라는 방관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렇게되면 서부유럽에서 대규모의 군수공장등을 증진한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영국항공전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투입한 전력들 투입할수 있었을것이라고 평가들을 하더군요.
  • 파리13구 2010/10/05 13:17 #

    그렇군요...
  • Cicero 2010/10/05 13:51 # 답글

    독일의 영국점령 이후를 가정한 대체역사작품으로는 it happened here라는 작품이 있죠. 이작품에서는 독일이 영국을 점령한뒤,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대부분 동부전선에 투입했고, 미군은 아일랜드에 주둔하면서 영국 레지스탕스를 돕는다는 시대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작품에서는 독일군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영국 파시스트들과 독일에 협력하는 영국인으로 구성되는 ss외국인 부대 흑태자사단이 등장하죠. 때문에 파리13구님이 제기하신 의문처럼, 영화개봉직후 일부 영국인들로부터 "그럼 우리가 점령되면 협력자들 나왔을거라는거냐?"하고 욕먹었죠. 물론 이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예스"였고요.
    또 다른 작품으로는 ss-gb, 국내에서는 "히틀러캡슐"이라고 번역되었던 소설이 있는데 여기서는 영국인들이 "겉으로는 협력하지만 많은 이들이 뒤에서 칼갈고 있는" 상황으로 점령치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 여기선 독일이 미국, 소련과는 전쟁중이 아닌 상황이지만, 내부 권력다툼으로 모순을 안고 있는 제국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가상 역사소설은 아니지만, 당시 독일의 작전계획서와 독일이 점령한 패널제도의 섬들에서의 회고를 바탕으로 점령이후를 가상으로 연구한 논픽션, If briton had fallen이 있는데, 제가 아직 이건 직접 보지 못했습다만, 리뷰에 의하면 전쟁개전직후부터 구상된 민병대들, 그리고 개전초부터 점령이후 투쟁과 종전후 권력장악을 염두한 공산당등과 같은 조직으로 인해 "치열한 저항이 이어졌을것"이라고 가정한다더군요.
  • 파리13구 2010/10/05 13:56 #

    전쟁 관련 대체 역사소설들이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 ^


    프랑스의 한 사이트를 보니, 프랑스가 나치에 항복안하고,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투쟁을 계속했을 때, 전개되는 가상역사에 대한 토론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네티즌들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후의 가상 역사를 가장 있을듯 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인데,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 ^
  • Cicero 2010/10/05 14:23 #

    영국점령이라는 경우에만 한정하면 이정도고 더 찾으면 더 많이 나옵니다. 근래에 접한 대체역사물은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서기장이 2~3년만 더살아서 반 고르비계를 일괄 숙청한덕에 이후 권자를 이어받은 고르비가 안정적인 개혁에 성공해서 소련이 지상낙원(...)이 된다는 내용이었죠...
    대체역사는 문학적으로 재미를 주고 사회적 메세지를 주는 효용성도 있지만, 정치학에서는 어떤 정치현상의 원인을 파악할때, 자주 사용하기도합니다. 예를 들어 2차세계대전의 원인을 탐구하고자 할때, 히틀러나 나치당이 집권하지 않았다면?-그래도 2차세계대전은 일어났을까 식의 가정을 던지고 검증하는 식으로 말이죠.
  • 파리13구 2010/10/05 14:34 #

    그렇군요...
  • 크핫군 2010/10/05 15:14 # 답글

    이거 다큐로 있던걸로 알고있습니다만
  • 파리13구 2010/10/05 15:26 #

    어떤 다큐였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 크핫군 2010/10/05 15:54 #

    디스커버리인가? 기억은 안나지만 바다사자 작전이 성공하여 영국이 독일지배하에 있었으면 어떠하였을까?를 가정하고 만든 다큐였습니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잘은 기억 안나네요
  • 파리13구 2010/10/05 15:59 #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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