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탱 ,비시 반유대주의의 원흉!" 레지스탕스

 


[프랑스]

[대독강점기] [비시정부][반유대주의][페탱]


비시 치하, 유대인의 지위를 규정한 문서 원본 발견.


프랑스 파리 - <르몽드> 보도...



103일 일요일, 변호사 세르주 크라스펠트가 194010월에 유대인의 지위를 규정한 문서 원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국가>의 문서는 필립 페탱 원수의 주석이 달려있는 것으로, 이미 극단적이었던 반유대주의 조치들을 더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 크라스펠트에 따르면, 페탱 원수의 주석들은 문서의 본질을 심각하게 변화시켰다고 한다.


Découverte du texte original établissant un statut pour les juifs sous Vichy

LEMONDE.FR avec AFP | 03.10.10 | 10h27 • Mis à jour le 04.10.10 | 15h24


L'avocat Serge Klarsfeld a annoncé, dimanche 3 octobre, la découverte du document original établissant un statut des juifs en octobre 1940. Ce document de l'Etat français est annoté de la main du maréchal Philippe Pétain, qui durcit considérablement des mesures déjà "extrêmement antisémites". Selon M. Klarsfeld, les annotations du maréchal Pétain "remanient profondément" la nature du document.


Le texte vise tous les juifs, français ou étrangers, alors que le projet initial prévoyait d'épargner "les descendants de juifs nés français ou naturalisés avant 1860". Le maréchal Pétain décide en effet de rayer cette mention. Le champ d'exclusion des juifs est également considérablement élargi. La justice et l'enseignement leur sont désormais totalement fermés. De plus, ils ne peuvent plus être élus. Enfin, le maréchal conclut ces "mesures antijuives" en demandant que "les motifs qui les justifient" soient publiés au Journal officiel.


최종법안에서는 프랑스인이던 외국계이던 모든 유대인들을 적용대상으로 삼게 되지만, 이번에 발견된 법안 초안에는 프랑스에서 출생한 유대인 후손 혹은 1860년 이전에 시민권을 획득한 유대인은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페탱 원수가 사실상, 이 면제 조항의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유대인들에 대한 공직추방의 범위도 심각하게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법률 과 교육 분야도 유대인들에게 완전히 폐쇄된 영역이 되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유대인들은 공직선출권도 상실했다. 결국 페탱 원수는 동기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이라 지적하면서, 이러한 반유대주의 조치들을 승인했고, 이것을 관보에 게재하도록 지시했다.


"La découverte de ce projet est fondamentale. Il s'agit d'un document établissant le rôle déterminant de Pétain dans la rédaction de ce statut et dans le sens le plus agressif, révélant ainsi le profond antisémitisme" du chef du gouvernement de Vichy, explique Serge Klarsfeld. Son fils, Arno Klarsfeld, assure qu'il ne fait "aucun doute" que l'écriture retrouvée sur le document est celle de Philippe Pétain après des comparaisons avec celle d'autres textes manuscrits signés du maréchal. "Le principal argument des défenseurs de Pétain était de dire qu'il avait protégé les juifs français. Cet argument tombe", constate Serge Klarsfeld,


이번 초안의 발견은 결정적이다. 이 문서는 유대인 지위에 대한 법률작성과 그 법이 더 공격적인 것이 되도록하는데, 페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고, 이는 비시정권 수장의 심각한 반유대주의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라고 세르주 크라스펠트가 지적하고 있다. 그의 아들, 아르노 크라스펠트는 문서에 등장하는 주석들은 필립 페탱의 필적이 분명하고, 이는 원수가 서명한 다른 문서들의 필적과 비교해 볼때 확실한 페탱의 그것이다고 확신하고 있다. « 페탱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의 핵심은 그가 프랑스계 유대인들을 보호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이제 근거없는 것이 되었다. »라고 세르주 크라스펠트가 확인하고 있다.


La cinquième feuille du projet, rapporte M. Klarsfeld, indique le lieu de sa rédaction et la fonction de ses rédacteurs : "Fait à Vichy, par le maréchal de France, chef de l'Etat, le vice-président du Conseil" et huit autres ministres. Il n'y a ni date, ni noms, ni signatures. Le projet de loi a été débattu lors du conseil des ministres du 1er octobre 1940, puis adopté le 3 octobre. Sa version promulguée au Journal officiel, le 18 octobre 1940, comporte tous les ajouts du maréchal Pétain,


이 초안의 5페이지에는 문서의 작성장소 와 작성에 참여한 사람들의 지위가 적시되어있다. : « 비시에서, 프랑스의 원수, 국가원수,국무회의 부의장” 과 8명의 장관들. 날짜 와 이름들 그리고 서명들은 없다. 이 법안은 1940101일의 국무회의에서 논의되었고, 103일에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19401018일에 관보에 게재된 최종법안은 페탱 원수의 지시사항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Jusqu'ici, les historiens ne pouvaient se référer qu'à un seul témoignage, en ce qui concerne Pétain et le statut des juifs, celui de l'ancien ministre des affaires étrangères de Vichy, Paul Baudouin. Dans un livre publié en 1946, ce dernier écrivait que lors du conseil des ministres du 1er octobre 1940, le gouvernement avait étudié "pendant deux heures le statut des israélites. C'est le maréchal qui se montre le plus sévère. Il insiste en particulier pour que la justice et l'enseignement ne contiennent aucun juif".


지금까지, 역사가들은 페탱과 유대인 지위에 관한 법의 관계에 대해, 단 하나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비시의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폴 보두앵의 증언이었다. 1946년에 출간된 회고록에서, 보두앵은 1940101일의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2시간동안 유대인 지위의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가장 가혹한 제안을 내놓은 것은 바로 페탱 원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법과 교육 영역에서 유대인들이 배제되어야 한다고 고집한 것은 바로 페탱이었다는 것이다.


"Le témoignage de Baudouin était formel, mais on pouvait le mettre en doute. Maintenant, on a la preuve définitive que le statut des juifs relève de la volonté personnelle du maréchal Pétain, souligne M. Klarsfeld. Le statut des juifs est une mesure spécifiquement française, spontanée. Les Allemands n'avaient pas demandé à la France de Vichy de prendre ce statut. Mais il y a eu une concurrence entre l'antisémitisme français et l'antisémitisme allemand."


보두앵의 증언은 공식적인 것이었지만,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이제 유대인 지위에 관한 법률은 페탱 원수의 개인적인 바람을 드러낸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라고 크라스펠트가 강조하고 있다. “유대인 지위에 관한 법률은 프랑스만의 특수한 조치였고, 즉흥적인 정책이었다. 독일이 비시 프랑스에 이러한 정책을 실시하라고 요구한 바 없었다. 프랑스 반유대주의 와 독일 반유대주의가 경쟁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




덧글

  • hyjoon 2010/10/05 10:39 # 답글

    나름 충격과 공포군요....ㄷㄷㄷ
  • 파리13구 2010/10/05 10:45 #

    프랑스에는 아직도 페탱빠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 BeN_M 2010/10/05 10:41 # 답글

    아렌트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2차대전 시기의 유대인 문제의 실상은
    지금까지 세간에 알려져있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는 걸로 보입니다.

    알면 알아갈수록
    나치가 한 일에 어떤 걸로도 면죄부를 줄 순 없겠지만
    타 국가들이 나치에게 독박을 씌웠다는 생각도 안할 수가 없게 되네요.
  • 파리13구 2010/10/05 10:46 #

    나치에 대한 협력은 전유럽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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