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싱호 사건 과 두개의 일본 제국주의! Le monde

코싱호 격침사건과 청일전쟁 그리고 영국?


대략 15년전에, 이 사건에 대해 처음 배웠을 때,

이런 것이 바로 제국주의 외교구나 하고 감탄한 바 있다.


이 사건 이전에, 일본에 대한 시각은

메이지 유신 이후, 강한 군사력을 육성하고,

그 성장하는 힘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깡패 국가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코싱호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일본은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적 패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서구 열강에 대해, 동아시아의 패권국가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즉, 군사력이라는 측면에서, 일본은 당시 이미 조선에서의 청군을 압도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은 도발을 2달 동안 자제했다는 것이 주목되었다.


일본은 청나라에 대한 군사도발을 감행하기 이전에,

열강이 이번 전쟁에서, 청나라 편으로 개입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외교적으로 확인될때까지, 치열한 외교전을 전개했다는 것이고,

이것은 동아시아에서의 패권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일본의 외교적 노력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단지 군사력만 강하다고 제국주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지역에서 열강이 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있는 다른 열강에게

자신의 패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 요청되는 것이고,

청일전쟁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바로 그런 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청일전쟁 이후, 삼국간섭의 굴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일본 외교는, 삼국 중 독일이 간섭에서 이탈할 조짐을 재빠르게 간파해서,

간섭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한 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 외교사적 관점에서,

청일전쟁 당시와 진주만 공격 당시의 일본 제국주의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일본은, 전쟁을 도발하기 이전에,

열강의 외교적 승인이 확인된 이후, 도발이 있었다고 한다면,

태평양전쟁의 서막을 알린,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이러한 외교적 인정이 없는 상황에서 단행된, 무모한 도발이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외교적으로 조심성있었던 메이지 일본 외교적 제국주의가

진주만 공격이라는 일대 도박을 하는, 쇼와 막장 제국주의로 변모한 배경은 무엇일까? ^ ^


덧글

  • 만슈타인 2010/10/02 16:20 # 답글

    이토의 죽음? 이랄까요 ... 국내에 외교파들이 나이들어 죽고 난 다음에 젊은 세대들 중 막장들이 2.26 같은 거 하면서 다이쇼 데모크라시 엎고 군국주의 뽕빨로 나간게 ==;;
  • 파리13구 2010/10/04 08:53 #

    네, 그렇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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