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에서 관용으로의 전환 논리... Le monde

기독교 박해의 경우...


박해란 두가지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는 폭력이며, 박해에 대한 이성적 지지자라면, 폭력이 그 자체로 악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험한 사상의 전파이다.


그런데, 전자를 선택하는 것은 단지 후자를 피하기 위해서 이며,

후자가 전자 보다 더 큰 악이라는 점이 근거가 되는 것이고,

전자라는 차악 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박해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수행되지 않으면,

즉, 폭력을 수행해 보았지만, 그 전파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악만이 고스란히 남게되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덧글

  • 소시민 2010/09/11 22:44 # 답글

    사상이 '위험'한지에 대한 여부도 자의적으로 정해지니까요...
  • 파리13구 2010/09/11 22:46 #

    네, 그것이 위험한지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되겠군요...^ ^
  • 궤도운 2010/09/12 18:07 # 답글

    이왕 박해하려면 확실히 하라.. 이정도면 되겠습니까?
  • 파리13구 2010/09/12 18:13 #

    박해가 무용하다는 판단이, 관용의 논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궤도운 2010/09/13 06:17 #

    알고 있습니다. 좀 짖궂게 해석한거에요 ^^;;
  • 파리13구 2010/09/13 08:04 #

    알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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