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소련보다 더 관용적 이었을까? Le monde

 


나치가 소련보다 더 관용적
?



기록에 따르면, 독일 나치 제3제국의 친위대 제국총통, 하인리히 힘러는 194131일에 처음으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방문했다. 이 방문에서, 힘러는 이제 아우슈비츠가 더이상 만명 만을 수용해서는 안되고, 3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실레지아 관구장, 프리츠 브라흐트 가 이는 너무 빠른 변화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면서 묵살했다. «  여러분, 수용소는 확장될 것이다. 나의 이유들이 당신들의 반대보다 더 중요하다. »


힘러의 명령에 대해, 그에게 순종적이었던 루돌프 회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조차도 비판적이었다. 회스는 힘러와 동승한 차량에서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 "건설 자재, 인원, 시간 모두 부족합니다. 즉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이에 대한 힘러의 대답역시 간단했다. "나는 더이상 어려움에 대해 듣고 싶지 않다. 친위대 장교의 사전에는 어려움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해내는 것이 바로 친위대 장교의 임무다. 어떻게? 그것은 당신 임무이지, 나의 임무가 아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회스가 힘러에게 항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소련 체제에서 였다면, 스탈린 혹은 베리야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어느 누구든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나치 지도부가 스탈린 체제의 그것보다는 내부비판자에 대해서 더 관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같은 이유때문에, 3제국이 스탈린의 제국보다 더 역동적이었다. 스탈린주의 범죄자들과는 다르게, 회스가 명령을 수행한 것은 스탈린 치하의 범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였다. 회스는 자발적으로 친위대에 가입했고, 그는 나치의 명령을 실행하면서 세부상황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결국 회스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은 명령을 받아서 였기 때문이었기 보다는, 그는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스의 행동은 복종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동조>의 산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덧글

  • nishi 2010/09/10 17:19 # 답글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특히 70~80년대 군 조직이나 행정부의
    상부로 가면....
  • 파리13구 2010/09/10 17:22 #

    원칙적으로, 강압과 복종 만으로 하나의 거대 체제가 운영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임지현 교수가 주장하는 <일상적 파시즘>도 기본적으로 상부단위가 아니라, 대중적 수준에서도, 파시즘은 강압이 아니라, 동의를 기반으로 유지된다고 봅니다.

    위의 글에서, 나치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 조차도, 명령이라기 보다는 자발적 동조를 통해, 유대인 대학살에 가담한 것이 아닐까라고 봅니다.
  • 만슈타인 2010/09/10 18:01 # 답글

    독일은 원래 전통적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의견 상신하는 게 좀 강한 나라여서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갠 적으로 나치와 소련공산당 비교 보단 그 나라 전통이나 관습이 쌓여온 것으로 두개를 비교해야 하지 않나 하는데, 저글은 나치와 소련공산당을 비교하는 느낌이 좀 드네요
  • 파리13구 2010/09/10 18:21 #

    어떤 말씀인지 알겠으나,

    나치와 소련을 비교하는 것은 학계의 오랜 전통이고,

    전체주의라는 틀에서, 각 체제의 차이의 비교분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적절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관점을 수용합니다.
  • 만슈타인 2010/09/10 18:38 #

    갠적으론 둘다 이념에서 극에선 자라 봐서 -_-;;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끄는 거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0/09/10 18:42 #

    그렇습니다...
  • 곰돌군 2010/09/10 18:10 # 답글

    사람은, 특히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은 상황에 따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반응
    하는 것이 자기자신을 위해서 좀더 나은 결과를 낳는 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선악의 판단기준은 개인과 일가족의 영달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앞에서 종종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피할수 없는 문제라면 수동적으로 끌려가기보다는 자기가 할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수 있다는 논리지요.

    인류애, 역사에 기록될 모습,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 옳은 일인가 하는 논제는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총구 앞에서는 너무나도 나약하기만 합니다.

    결국 그들 나름대로의 대가를 치루어야 했지만, 앞으로 또 그런일이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때 당당하게 맞설수 있는

    강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 않으니까요. 정치적인 포지션을 막론하고
    극단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파리13구 2010/09/10 18:22 #

    동감입니다...
  • ArchDuke 2010/09/10 20:19 # 답글

    하지만 결론은 까라면 까.......였다니 OTL
  • 파리13구 2010/09/11 07:34 #

    ^ ^
  • 액시움 2010/09/10 22:16 # 답글

    하지만 결론은 까라면 까......였다니 OTL (2)
  • Threshold 2010/09/11 01:29 # 답글

    저당시에는 히틀러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제법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아우슈비츠도 그중 하나였던것같네요..
    아우슈비츠에서 학살이 자행되고있을때 히틀러가 그곳에서 대체 어떤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확실히 알지는 못했을껍니다.
    힘러의 입김이 제법 작용했던것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회스의 회고록에 관련 내용이 있을겝니다 아마..
  • 에드워디안 2010/09/12 19:24 # 답글

    그래도 나치와 소비에트 둘 다, 범죄 속성을 지닌 집단이었지요. 굳이 비교하자면, 히틀러 정권이 약간 온건한 마피아고, 스탈린 정권은 시카고 갱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듯...
  • 파리13구 2010/09/12 19:27 #

    ^ ^
  • ff 2013/06/30 21:58 # 삭제 답글

    나치는 평화를 사랑했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해서 어쩔수없이 전쟁한거고 소련은 그냥 범죄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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