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왕의 허약함이 잉글랜드의 힘이었다." Le monde

자본주의 발전 초기단계의 역사에서

왕,중앙권력 과 부르주아 세력간에는 일반적으로 역함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왕이 강하면, 부르주아가 약해지고, 반대로 왕이 약하면, 그만큼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니알 퍼거슨은 <제국>에서 , 대영제국 초기 역사에서 

당시 잉글랜드의 다음과 같은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군주의 권력은 결코 절대적이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 나라의 부유한 귀족층에 의해 그리고 나중에는 두 의회에 의해 왕권은 항상 제한되어 있었다.

1649년에는 잉글랜드 왕이 의회의 정치적 요구에 감히 저항하다가 처형되는 일까지 있었다. [역자주 - 잉글랜드 내전, 즉 잉글랜드 왕국왕당파의회파간에 있었던 내전에서, 1649년 1월 30일 잉글랜드 의회는 찰스 1세를 대역죄로 처형하였다. 국왕을 처형한 의회는 공화정을 선포하고 잉글랜드 연방(또는 잉글랜드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며, 호국경으로 올리버 크롬웰을 선출하였다.]

재정적으로 의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잉글랜드 군주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용병에 의존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바로 잉글랜드 국왕의 허약함에 미래의 힘이 숨어 있었다. 폭넓게 정치 권력이 퍼져있었기 때문에 재산 역시 그랬다. 세금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징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돈을 가진 사람들은 [부르주아지] 절대적인 통치자에 의해 착복되지 않을 것임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이 사업가들에게 중요한 유인임이 곧 증명될 것이었다.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에 따르면, 이같은 관점은 동아시아 3국의 엇갈린 역사에서도 확인가능하다.

가령, 중국,한국,일본 중에서, 왜 일본만이 서양식 자본주의 발전을 스스로 추진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일본의 성공 이유는, 바로 그 사회체제가 유럽의 봉건제와 가장 유사했다는 점,

즉 국가와 중앙권력의 힘이 중국와 한국에 비해서는 약했다는 점이,

일본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에서, 시장교환경제는 그 발전한계에 도달할 만큼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고,

이를 통해 부르주아지라고 부를 만한 가문들도 출현했지만,

이 가문들이 사업을 계속하기 보다는, 다음 세대에 가서는 관리가 되어, 귀족화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식으로 부르주아가 왕과 전근대 국가에 도전하기 보다는,

중국에서는, 부르주아가 귀족화되는 길을 택했던 것, 즉 국가의 힘이 지나치게 강했던 것이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독자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원인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초기 자본주의 역사와 관련해서, 왕의 허약함이 잉글랜드 미래의 힘이었다면,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반대로, 중국,한국에서는, 왕,국가 의 강력함이 양국의 허약함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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