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플랑드르,왈로니,벨기에 그리고 유럽 사이에서... Le monde

혹은 다양함이 어떻게 유일함을 이길 수 있는가의 이야기!


[정체성] 복수의 «»들에 대한 찬사!

2010 2 19

 

플랑드르인, 왈로니인 혹은 벨기에인? 아니면 혹시 유럽인? [역자주-플랑드르인은 벨기에 북부에서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인구이고, 왈로니인은 남부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작가 이스텐달에게, 국왕 알베르 2세의 백성들이 가진, 너무도 다양한 정체성이 약점이 아니다. 차라리, 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것이 다른 국민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Identités

Eloge du moi multiple

Publié le 19 février 2010  |   De Standaard

 

Flamand, Wallon, ou Belge ? Ou Européen, peut-être ? Pour l’écrivain Geert van Istendael, le trop-plein d'identités des sujets d’Albert II n'est pas un handicap. Au contraire, dans un monde changeant, il pourrait inspirer les autres peuples.

 

 

J’ai toujours trouvé que le manque de fierté nationale du Belge était plutôt rafraîchissant. Les Américains qui chantent la main sur le coeur leur Star-Spangled Banner m’assomment. Je regarde avec étonnement et une certaine compassion les Néerlandais orangistes et leurs excès. Et nous avons pu constater il n’y a pas si longtemps dans les Balkans, à quel point une conscience identitaire gonflée à bloc peut être fatale.

 

나는 벨기에인들이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신선하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부르는 미국인들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 나는 네덜란드 오렌지주의자들과 그들의 과도한 행동들을 충격과 연민의 시선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불과 얼마 전 발칸반도에서, 분열되어 팽창된 정체성의 자각들이 어떤 식으로 치명적인 것으로 돌변하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Nous, les Belges, ne sommes pas comme ça. Pas de guerre civile, pas d’hystérie, pas de sentimentalisme. Nous acceptons notre caractère flou d’un haussement d’épaules. Trois langues ? Et alors ? C’est notre identité. Trois cents sortes de bière ? Voilà encore notre identité. Il faut l’admettre : notre identité hypothétique est totalement artificielle. Mais en ce sens, elle ne se distingue nullement des autres identités européennes. Alors en quoi est-elle différente des autres, au juste ? Que penser de l’amalgame décousu des citoyens du bric-à-brac qui s’appelle la Belgique ?

 

우리 벨기에인들은 그렇지 않다. 내전도, 히스테리도,감상주의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특성이 어깨를 들어올리며 냉소하는데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3개의 언어 ? 그것이 어째서?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300 종류의 맥주들? 이것도 우리의 정체성이다. 다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 우리의 불확실한 정체성은 완전히 작위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정체성도 유럽의 다른 정체성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국민정체성은 다른 정체성들과 정확히 어떻게 다를까? 벨기에인이라 불리는 잡다한 시민들이라는, 일관성이 결여된 혼합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Je pense que nous, les Belges, avons intérêt à supprimer le singulier du mot identité. Nous appartenons, en premier lieu, à des communes. Nous sommes des particularistes incorrigibles. Nous venons de Gand ou de Turnhout ou de Charleroi et de nulle part ailleurs, et nous aimons le faire savoir haut et fort.

 

나는 우리 벨기에인들이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단수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첫째, 코뮌들[지방자치단체의 하부단위] 출신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갠드 혹은 턴후트 혹은 샤를르와 혹은 이 나라의 방방곡곡 출신들인 것이며, 우리는 사람들이 이점을 알아주기를 강하게 열망한다.

 

En second lieu, l’histoire de notre querelle linguistique pacifique a fait de nous des Flamands et des Wallons. Il existe des miettes identitaires encore plus petites, mais je m’en tiens aux grandes lignes. Ces identités aussi, la flamande, la wallonne, sont artificielles. Elles n’existaient tout simplement pas avant 1830 [date de l’indépendance du pays]. Le Flamand, tel qu’il va à la rencontre du monde, est un produit secondaire de la Belgique. Donc doublement artificiel. Le Wallon, de son côté, est un produit secondaire du produit secondaire flamand.

 

둘째, 우리의 평화적인 언어적 분쟁의 역사가 플랑드르인 과 왈로니인의 탄생을 가져왔다. 이것도다 더 작은 정체성의 조각들이 존재하지만, 나는 큰 것들만 다루려 한다. 플랑드르 , 왈로니 같은 정체성들도 작위적인 것이다.  이것들은 벨기에가 독립한 1830년 이전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플랑드르는 벨기에 탄생의 부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이중적으로 작위적인 것이다. 한편, 왈로니는 부차적으로 탄생한 플랑드르의 부산물인 것이다. [역자주- 삼중적으로 작위적임!]

 

Et puis il y a la Belgique, car nous sommes également Belges. Et puis il y a l’Europe. Permettez-moi de me référer un instant aux belles-lettres. Le grand écrivain franco-libanais Amin Maalouf dit  que nous sommes l’addition de différentes racines, identifications, appartenances selon ses termes. Pourquoi y aurait-il une seule identité qui ferait de l’ombre à toutes les autres ? De telles identités deviennent rapidement les identités meurtrières, titre qu’il a donné à l’un de ses meilleurs essais [Grasset, 1998].

 

그리고, 벨기에가 있으며, 우리는 물론 벨기에인들이다. 그리고 유럽도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멋진 문장 하나를 인용고자 한다. 위대한 레바논계 프랑스 작가, 아민 마루프는 우리가 각기 다양한 뿌리들, 정체성들, 귀속들로부터의 결실이라고 했다. 왜 단 하나의 정체성만을 강조하면서 다른 다양한 정체성들을 가리려고 하는가? 이런 유일한 정체성은 곧 살인적인 정체성을 돌변하게 된다고 마루프가 지적한바 있고, 이것은 그가 남긴 최고의 문장들 중 하나이다.

 

L’idée de Maalouf est une première nécessité dans ce 21e siècle. Sur presque toute la surface de notre planète, des centaines de milliers de personnes se déplacent dans tous les sens et il ne semble pas que cela soit prêt de changer. Plus que jamais les identités sont brassées, elles se heurtent, elles s’embrassent, elles tuent. Elles tuent aussi, massivement.

 

마루프의 생각은 이번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지구의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동 중에 있고, 이런 현실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역사상, 정체성들이 이렇게 혼합된 적은 결코 없었고, 정체성들이 충돌하고 있고, 서로 포옹하고 있고, 죽이고 있다. 정체성들이 또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En fait, nous devrions savoir gérer cette confusion, ici en Belgique, puisque nous la connaissons depuis que notre pays existe. Notre secret n’est pas tant que nous, les Belges, n’ayons pas de véritable identité. Au contraire. Nous, les Belges, nous avons trop d’identités. Nous avons trop de choix. Mais pourquoi serait-ce un problème ? Pourquoi nous restreindre en nous forçant à faire des choix qui sont superflus, et même dommageables ? Du coup, la menace de l’Autre disparaît aussi. Car il fait partie de nous-mêmes depuis longtemps.

 

사실, 우리는 이런 혼란을 통제하는 법을 알아야만 하며, 이곳 벨기에에서 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 방법을 우리 나라가 존재하는 때부터 알고 있다. 우리의 비밀은, 우리 벨기에인이 진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다. 우리 벨기에인은 너무 많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다양하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왜 우리가 이렇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 흘러 넘치는 정체성의 풍요를 버리고, 우리를 단 하나의 그리고 선동적인 정체성으로 축소시켜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비밀덕분에, 타자의 위협도 사라졌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그들이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대문이다.

 

Un autre écrivain, et pas le moindre, Fernando Pessoa, le savait très bien : " Na vasta colónia do nosso ser há gente de muitas espécies, pensando e sentindo diferentemente": "Dans la vaste colonie de notre être habitent de gens de toutes sortes, qui pensent et sentent différemment".

 

또 한 명의 작가, 페르난도 페소아 는 이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이 드넓은 세상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끼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Parfois, très rarement, je suis gagné par la nostalgie de la rigidité française, la rigueur républicaine, la république une et indivisible. Ils sont aux prises avec leur image de soi, les Français, ils sont en pleine discussion sur leur identité. Certes leur identité est au singulier, mais quand-même.. J’espère que le débat français ne déraillera pas. Peut-être nous les Belges nous pourrions les  

 

가끔, 매우 드물게, 나는 프랑스의 융통성 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하나의 분열할 수 없는 공화국이라는, 프랑스 공화국의 완고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프랑스인이라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집착하고 있고, 그들은 최근에 국민 정체성에 대한 토론을 한창 벌이고 있다. 확실히, 그들의 정체성은 단수이고, 유일한 것이다. 이것은 유감일 따름이다. 나는 프랑스의 논쟁이 본래 취지에서 탈선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마도 우리 벨기에인들이 이런 논쟁을 벌일 일은 없을 듯 하다.




덧글

  • 행인1 2010/02/22 14:17 # 답글

    300 종류의 맥주라니 정말 다양하군요.
  • 파리13구 2010/02/22 14:22 #

    벨기에 맥주의 다양성은 그 명성이 자자합니다.

    나중에 유럽 가시면, 벨기에 에서는 맥주는 마셔보심이...^ ^
  • 물고기 2010/02/23 00:04 # 삭제 답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체성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이런데 관심있어서요.^^
    저도 13구에서 일년쯤 살았죠. 괜히 반가운 건 왤까요?ㅎ(전 Butte aux Cailles에 세들어 있었답니다. 예쁜 동네에, 파리 코뮌 관련 흔적도 있고 첨에 꽤 인상 깊었죠^^)
    파리13구님 번역 실력이 짱인 듯.. 어쩌다 알게 돼 좋은 글도 보고 많이 배웁니다.
    거기서 들은 벨기에인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하나, 벨기에인들을 덜 떨어지고 촌스럽다. 제가 머문 동안에도 그걸 풍자한 코믹 로브무비가 개봉했던 게 기억나네요.( 영화 생각하니 갑자기 소르본 근처 작은 극장들이 생각나요. 주말마다 달려가서 영화보고 했었는데...시네마테크의 멋진 상영관들도요.^^)
    글구, 둘째, 벨기에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특히 파리지앙에 비해 솔직하고 등등..말하자면 서울사람들처럼 도회적 내숭이 벨기에인들엔 없다. 퐁피두 맞은편 벨기에 문화관에서 본 현대극도 참 재기발랄했었던 기억이.. 덕분에 이제 파리의 추억이 된 지난 시간 패키지로 떠올리다 갑니다.^^;;
  • 파리13구 2010/02/24 08:56 #

    반갑습니다! ^ ^

    저는 13구 아브뉘 디탈리의 메종 블랑슈 에서 살았답니다.

    뷔트 오 카이으 에는 몇번 지나가다가 차마신 적이 있죠.

    아무튼.. 자주 방문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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