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구스틀로프 침몰 혹은 귄터 그라스의 타이타닉! 유럽외교사


영화 <타이타닉>이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경계하는 것이라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 <게걸음으로 가다>는 신나치의 역사 왜곡에 대한 경계다.
즉, 전쟁 중 독일인의 희생을 이야기 하려면, 제대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다음은 신나치의 대두에 대해 작가가 한 발언이고, 책을 소개한 글의 번역이다.


"지난 역사, 더 정확해 말해서 우리와 관련된 역사는

꽉막힌 변소와 같다.

우리는 씻고 또 씻지만, 똥은 점점 더 높이 차 오른다."

- 귄터 그라스, 게걸음으로 가다, 137페이지...



잊혀진 침몰

독일 과 그 자식들

 

도미니크 비달  Dominique Vidal

프랑스 파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 2


UN NAUFRAGE OUBLIÉ

L’Allemagne et ses fils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
 

Qui dit naufrage pense Titanic. Pourtant, au XXe siècle, il y en eut de plus tragiques. A commencer par celui du paquebot allemand Wilhelm Gustloff, coulé, le 30 janvier 1945, près de Dantzig par un sous-marin soviétique, le S-13. A son bord s’entassaient plusieurs milliers de civils allemands redoutant la vengeance de l’Armée rouge, alors en pleine offensive vers l’Allemagne - mais aussi, précision importante, 1 336 sous-mariniers et auxiliaires ainsi que des batteries de DCA. Aucune liste de passagers n’ayant été établie, leur nombre précis reste inconnu - sauf celui des enfants et adolescents : plus de 4 000. Seuls quelques centaines de passagers survivront au naufrage. Parmi ces miraculés, le narrateur, auquel sa mère donne naissance en cette journée tragique et qui, près de six décennies plus tard, revit pour nous toute cette histoire.


보통 침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타이타닉호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일 유람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침몰로, 이 선박은 1945 1 30, 단치히[폴란드어-그단스크] 부근에서, 소련 잠수함인 S-13에 의해 침몰되었다. 배에는, 붉은 군대에 보복을 두려워했던, 수천 명의 독일 민간인들이 타고 있었고, 당시 소련군은 독일에 대해 총공세 중 이었고, 하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1336명의 잠수함 승무원 및 관련 병과 해군들 그리고 대공포도 승선되어 있었던 것이다. [역자주 위키페디아가 인용한 공식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공식 기록에는 918명의 제2 잠수함 훈련 부대의 해군 군인, 173명의 승무원, 373명의 해군 여성 보조 부대, 162명의 부상병, 4424명의 난민, 합계 6050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  탑승자 명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탑승인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기들과 어린이들이 4000명 이상 타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침몰에서, 단지 수백명의 승객들만이 생존하게 된다. 이 기적과 같은 생존자들 중에는, 귄터 그라스 소설의 화자, 즉 그의 어머니가 바로 이날에 그를 낳았고, 이날로부터 대략 60년 이상 지나서, 우리에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Ou plutôt ces histoires. L’histoire du paquebot lui-même, le plus prestigieux des navires de croisière de Kraft durch Freude (1), cette organisation de loisirs créée par le dirigeant national-socialiste Robert Ley afin d’« acheter » la classe ouvrière. L’histoire du commandant du S-13, Alexander Marinesko, auquel son tir au but, avec une torpille dédiée à Staline, vaudra une médaille de héros de l’Union soviétique, mais d’abord plusieurs années de goulag. L’histoire de celui dont le paquebot porte le nom, Wilhelm Gustloff, un chefaillon du parti nazi de Suisse devenu « martyr » du parti et de sa ville natale, Schwerin, après son assassinat, le 4 février 1936, par un étudiant juif. L’histoire de ce dernier, David Frankfurter, qui rêvait par son geste de « réveiller son peuple » - Herschel Grynspan, qui voulait, lui, venger les siens, donnera le signal de la « Nuit de cristal » en tuant à Paris le diplomate Ernst von Rath. L’histoire du narrateur, journaliste free-lance après être passé par la presse de Springer et avoir pigé pour le quotidien tageszeitung (2). Enfin, l’histoire de cet internaute décidé à réhabiliter le « martyr » Wilhelm Gustloff et à faire connaître le martyre des naufragés du navire homonyme...


소설을 구성하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이 유람선은, <기쁨을 통한 힘>이 보유한 초호화 유람선이었고, 이 여행 알선 기관은 노동자 계급을 «매수»하기 위해서, 나치의 독일노동전선 지도자인 로버트 라이가 만든 단체이다. 소련 잠수함 S-13호 함장의 이야기는, 그는 알렉산더 마리네스코 였고, 스탈린에게 헌정된 어뢰발사를 명령한 자로, 소련의 영웅 훈장을 받았지만, 그 전에 우선 수년 동안 굴락[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어야만 했다. 유람선의 이름이 된 사람의 이야기는, 그는 빌헬름 구스틀로프 로, 스위스 나치당의 지구당 지도관 으로, 1936 2 4일에 한 유대인 대학생에서 암살당한 후, 당과 그의 고향인 슈베린의 희생자 영웅이 되었다. 이 암살자의 이야기는, 그는 다비드 프랑크푸르터 로, 그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민족을 일깨우고자 한 것이며, 마치 헤르셸 그린슈판,17세의 독일계 청년이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 3등 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를 암살해서, <수정의 밤>이라는 사건을 초래했던 것처럼 말이다. 소설 화자의 이야기는, 그는 프리랜서 기자로, 처음에 슈프링거 지를 위해 일하다가, 이후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지를 위해 일했다. 마지막으로, 한 네티즌의 이야기로, 이 사람은 <희생자> 빌헬름 구스틀로프를 재발견해내고, 동명의 배의 침몰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해 알리려고 하는 자이다.

 

Günter Grass excelle dans ces labyrinthes où se perd la linéarité des récits traditionnels : il aime à passer d’un personnage à l’autre et d’une thématique à l’autre, quitte à multiplier les allers-retours entre passé et présent. D’où ce titre, En crabe, qui qualifie moins le roman que la démarche du romancier.

 

귄터 그라스는 전통적인 이야기방법과는 다르게, 이러한 미로들 속에서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다. : 그는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그리고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그리고 과거 와 현재를 거듭 왕복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책의 제목인, <게걸음으로 가다>가 나온 것이고, 소설가의 방법론이 이랬던 만큼, 덜 소설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Rien là d’un simple exercice de style. L’auteur s’y livre avec délice pour mieux plonger et replonger le couteau dans la vieille plaie mal cicatrisée qu’il adore creuser depuis des décennies : le rapport aussi douloureux que contradictoire qu’entretient l’Allemagne avec son passé. A l’image de cet incroyable personnage de la mère du narrateur, la menuisière Tulla Pokriefke, issue d’une famille très populaire réfugiée de Koschnévie, bonne communiste de République démocratique allemande et néanmoins nostalgique des « bons » aspects du IIIe Reich...

 

소설의 스타일은 전혀 단순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작가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에 대한 슬픔을 고조시키는데 즐겁게 전념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지난 수 십 년간 추구해온 방법이다 : 독일이 자신의 과거와 가지는 관계가 뼈아플 뿐만 아니라 모순적이라는 것에 대한 보고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소설 속 화자의 어머니라는 인물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인 툴라 포크리프케 는 가구업자로, 매우 서민적인 가정 출신의 전쟁난민이었고, 동독 시절에는 훌륭한 공산주의자였지만, 공교롭게도 제3제국 시절에 대한 긍정적 태도라는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Mais Günter Grass s’inquiète surtout de la relecture a-critique du national-socialisme par de jeunes générations sur lesquelles, après quatre décennies de RDA, l’antifascisme communiste n’a plus prise. Les groupes néonazis, on le sait, proliférèrent plus à l’Est qu’à l’Ouest après l’unification allemande. Poignante découverte que celle du narrateur : l’animateur du site néonazi et antisémite à la gloire du « martyr » Wilhelm Gustloff n’est autre que son fils Konny, 16 ans, qu’il a abandonné - ou presque - à son ex-femme depuis son divorce et que sa grand-mère a littéralement embrigadé. Si l’Allemagne néglige ses fils, comme le narrateur le sien, elle doit s’attendre à un drame.

 

하지만 귄터 그라스는 특히 수정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동독이 40년 동안 존재한 후, 공산주의적 반파시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 세대들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관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신나치들은 독일 통일 이후에, 서독지역에서 보다는 구동독 지역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소설에서 화자는 매우 치명적인 발견을 하게 된다 : 신나치 사이트 운영자이자 희생자인 빌헬름 구스틀로프 를 찬양하면서 반유대주의를 선동하는 자가 바로 16세의 그의 아들인 코니 였고, 전처와의 이혼 이후로 그는 아들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왔던 것이고, 그리고 그의 할머니, 툴라가 그를 문자 그대로 세뇌시켰던 것이다. 만약, 화자가 자기 자식에게 그랬던 것처럼, 독일이 그 자식들에 대해 소홀히 한다면, 독일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Entre un récit « politiquement correct », qui tait par exemple ces crimes de guerre représentés par l’assassinat des milliers de passagers civils du Wilhelm Gustloff ou par le monstrueux bombardement de Dresde, et la relecture hagiographique de la barbarie nazie comme la négation du génocide, le chemin de la vérité historique reste étroit. Sans doute, pour le suivre, faut-il marcher en crabe...

 

<정치적인 올바름>이라 관점에서, 가령 빌헴름 구스틀로프 호의 민간인 승객에 대한 학살 과 드레스덴에 대한 야만적 공습과 같은 것이 대변하는 전쟁범죄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태도와 그리고, 유대인 대학살 부정론 처럼 나치의 야만을 숭배하는 수정주의적 태도 사이에서, 역사적 진실에 도달하는 길은 비좁다라는 것이다. 명백히,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게걸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 귄터 그라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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