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폴란드인은 아우슈비츠에 대해 애도하지 못할까? Le monde

한 폴란드 예술가가 바르샤바의 외벽에,
"유대인이여, 너는 나를 그리워한다"라는 낙서를 남기자,
몇 일뒤, 이 낙서에서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 의해서 삭제되었다.


[폴란드]반유대주의와 싸우기 위한 낙서들...

 

바르샤바의 한 예술가가 동료시민들에게 옛날 옛적 폴란드에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는 한번도 이에 대한 슬픔을 표명한 적이 없다.

 

폴란드 바르샤바 가제타 비로르차 지 보도...

GAZETA WYBORCZA (extraits)

Varsovie

 

POLOGNE

Des graffitis pour combattre l’antisémitisme

Un artiste de Varsovie rappelle à ses concitoyens que de nombreux Juifs ont vécu en Pologne.

Et que le pays n’a jamais porté leur deuil.

 

Dans sa jeunesse, Rafal Betlejewski, 41 ans, ne sinteressait pas du tout aux Juifs. Solidarnosc, Walesa et lamour de lUnion sovietique etaient les seuls sujets dont on parlait autour de lui. Quand il est alle visiter le camp dAuschwitz avec sa classe, il na ete question que des milliers de victimes polonaises. Personne na mentionne les Juifs.

 

유년시절에, 라팔 베트레제프스키는 ,41, 유대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바웬사의 연대노조 운동 과 소련에 대한 사랑이 그의 주변인물들이 이야기한 유일한 주제들이었다. 그가 학교에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방문했을 때도, 문제시 된 것은 수천명의 폴란드 희생자들 뿐 이었다. 아무도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Ma conscience s’est imprégnée des blagues antisémites entendues dans mon entourage, du mépris à leur égard, des légendes sur leur complot mondial, sur le communisme fondé par les Juifs, se souvient- il. Moi-même, dans les années 1990, j’ai exprimé des opinions engagées sur la domination des Juifs dans les médias, sur leur hypersensibilité au sujet de l’Holocauste, sur leurs tentatives de monopoliser la souffrance.”

 

«나의 양심은 내 주변인물들이 자주 언급했던 반유대주의 농담들로 인해 오염되었고, 유대인에 대한 그들의 경멸적 시선,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에 관한 전설들, 유대인이 만든 공산주의 신화 등으로 훼손되었다고 그가 회상한다. 나 스스로, 1990년대에, 유대인의 세계지배에 대해, 홀로코스트에 대한 그들의 과민반응, 그리고 고통을 독점하고자 하는 유대인의 시도들을 규탄하는 견해를 언론에 표명한 바 있다

 

La lecture des livres de Jan Gross et dAnna Bikont [sur le massacre de Jedwabne, commis en 1941 par les Polonais] a constitue un choc pour lui. “Telle une grenade, ils ont provoqué un bouleversement dans ma tête et m’ont dévoilé mon ignorance”, dit-il.

 

이런 상황에서, 얀 그로스 와 안나 비콘트가 쓴, 1941년 폴란드인들이 자행한 제드바네 학살에 관한 책들을 읽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역자주 – 1941 7, 독일에 점령된 폴란드에서 폴란드인들이 자행한 유대인에 대한 학살사건을 말한다.]  «머리에 폭탄을 맞은 듯, 이 책들은 내 머리에 강한 충격을 주었고, 나는 나의 무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그가 말한다.

 

A lepoque, Betlejewski etait deja un artiste connu. Il sest rendu a Jedwabne. Dabord, il a voulu y eriger une sculpture en forme de confessionnal, mais le projet etait bien trop audacieux aux yeux des habitants, accuses davoir participe au crime ; il la donc abandonne pendant cinq ans. Puis, a lautomne 2009, il a realise un enorme graffiti sur un mur dans le quartier de Wola, a Varsovie : “Juif, tu me manques !”

 

당시에, 베트레제프스키 는 이미 명성있는 예술가였다. 그는 학살이 발생한 제드바네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죄를 고백하는 형식의 동상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 계획은 그 마을 주민들에게 너무 무모한 것으로 보였고, 이는 이들이 이 범죄에 가담한 것을 비난하는 동상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는 이후 5년동안 이 계획을 보류했다. 그리고 2009년 가을, 그는 바르샤바의 볼라 지구의 한 벽에 거대한 낙서를 그린다 : «유대인이여, 너는 나를 그리워한다라고 쓴 낙서를 말이다.

 

Quelques jours plus tard, une main inconnue a soigneusement recouvert de peinture le mot Juif , mais Betlejewski, sans se laisser decourager, a continue de peindre son slogan dans les quartiers de la capitale ou les Juifs vivaient jadis. A Powisle, il a ete arrete par la police. “Ils pensaient que c’était un acte antisémite, explique-t-il. Car, en général, le mot ‘Juif’ peint sur un mur est une insulte. Pendant l’interrogatoire, l’un des policiers m’a dit : Sils te manquent tant, les Juifs, fous le camp en Israel !

 

몇 일 후, 한 신원미상의 붓질이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정교하게 지워버렸지만, 베트레제프스키는 낙담하지 않고, 폴란드 수도의 여러 동네들 혹은 과거에 유대인들이 살았던 곳에 자신의 구호를 써나가기를 계속했다. 이런 도중에, 포비슬레 에서, 그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당국은 이것이 반유대주의 활동이라 판단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벽에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낙서되어 있는 것은 유대인에 대한 모욕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문 도중에, 한 경찰관이 나에게 말하길, 정말로 유대인들이 너를 그리워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Alors il y est alle. Sur le mur dun cafe de Tel-Aviv, il a ecrit, en accord avec le proprietaire : “Tu me manques, Juif. Tu manques à Varsovie.”

 

이렇게 해서, 그는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카페 주인의 동의를 구해서, 그는 텔아비브의 한 카페 벽에 다음과 같이 낙서했다. «유대인이여, 너는 나를 그리워한다. 너는 바르샤바를 그리워한다

 

“Des Israéliens originaires de Varsovie l’ont vite remarqué, et sont restés perplexes”, raconte Judyta Nekanda- Trepka, qui fait partie de la communaute juive de Varsovie. “Etait-ce une moquerie ou un sentiment sincère ?”

 

«바르샤바 출신의 이스라엘인들이 이것을 재빨리 알아보고, 당황했다»고 바르샤바 의 유대인 공동체 출신의 트레프카가 회상한다. «이것이 놀림 인가 ,아니면 진지한 감정표현인가

 

“Les passants ne peuvent connaître la raison exacte pour laquelle cette inscription a été faite et cela peut prêter à confusion”, estime pour sa part Piotr Pazinski, redacteur en chef du mensuel [juif] Midrasz, publie a Varsovie. “Ce message peut facilement être détourné.”

 

«행인들은 이런 문구가 왜 적혀있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간파해내지 못했고, 이것이 혼란을 초래했다»고 바르샤바에서 발행되는 한 유대계 월간지의 편집장인 파진스키가 지적했다. «이 구호는 손쉽게 왜곡될 수 있었다»는 것.

 

Rapidement, Betlejewski a fait des emules. Un certain Bartek a realise son graffiti sous un pont de Varsovie. “Ce n’est pas de l’art”, lui a dit un passant. “Un manifeste, tout au plus. Et des Juifs, en Pologne, il y en a plein.”

 

시간이 약간 흐르자. 베트레제프스키는  방해꾼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 행인은 그에게,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 폴란드인은 바르샤바의 한 다리에 그의 낙서를 다음과 같이 남겼다. «그것은 시위, 그 이상은 아니다. 그리고 폴란드의 유대인, 그들은 아직도 많다

 

“Je cherche à exprimer un sentiment de manque, precise Betlejewski. Je veux que l’on se souvienne d’individus qui ont vraiment existé, qu’on évoque leurs noms – connus ou inconnus. Ceux qui ont péri pendant la guerre ou ont été chassés de Pologne après 1968 [à la suite des purges antisémites orchestrées par le régime communiste].” Sur son site (www.tesknie. com), il a lance un appel pour quon lui envoie des lettres adressees

aux Juifs. Il a voulu photographier les auteurs de ces lettres dans des lieux importants pour eux, en les installant a cote dune chaise vide, pour symboliser labsence. Mais, avant de creer cette page sur le Net, il est retourne a Jedwabne voir la famille Chmielewski, rencontree cinq ans plus tot. “Alors que les habitants de Jedwabne étaient présentés par les médias comme des criminels, les Chmielewski ont été les seuls à consentir à me recevoir et à me parler”, dit Betlejewski. Toutefois, ils ont longuement hesite avant daccepter de poser pour la photo. Ils ne voulaient pas sattirer dennuis ; quant a accueillir un graffiti sur leur mur, cetait un peu risque. “Mais les temps changent, et ceux qui pensent comme nous sont de plus en plus nombreux”, explique Betlejewski. Il a publie les premieres photos sur Facebook. En quelques jours, il a recu des centaines de messages du monde entier.

 

«나는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베트레제프스키가 정확히 밝혔다. «나는 사람들이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개인들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그들이 그들의 이름들을 상기하기를 원했다. 그들의 이름이 알려졌던, 안알려졌든 상관없이 말이다. 전쟁 동안 사망한 유대인들 혹은 1968년 이후 공산주의 체제가 행한 반유대주의 활동에 의해 폴란드에서 탄압을 받은 유대인들을 사람들이 기억하기를 원한다그의 사이트에, 그는 방문자들에게, 유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유대인에게 중요한 장소들에서 이들 편지 작성자들 사진을 찍고자 했고, 이들의 옆에는 유대인의 부재를 상징하는 의미로, 빈 의자를 놓고자 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이 페이지를 만들기 전에, 그는 5년전에 알게된, 츠미레프스키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학살 현장인 제드바네를 방문했다. «언론에서 제드바네 주민들을 범죄자들로 묘사했기 때문에, 츠미레프스키 가족은 나를 만나는데 기꺼이 동의하고, 나의 이야기를 나눈, 유일한 이 마을 주민이었다라고 베트레제프스키가 회고했다. 과거에, 이 가족은 사진 촬영을 하자는데 아주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들이 적대적인 사람들의 시선에 띄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들의 벽에, 낙서를 허락하는 것은 당시에 다소 위험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이 변해서,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베트레제프스키가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초의 사진들을 이미 올렸다. 몇일이 지나자, 그는 전세계에서 답지한, 수백개의 댓글을 받았다.

 

“Betlejewski attire l’attention sur le fait que l’absence des Juifs en Pologne a été occultée, affirme Mme Nekanda- Trepka. Il y a trois ans, je me suis rendue dans une petite ville. Selon le guide touristique, les Juifs constituaient jadis 80 % de la population. J’ai essayé d’imaginer leur disparition : je me levais le matin pour aller chercher de l’eau au puits. Tout ce que l’on entendait, c’était un grand silence. Plus personne. Après la guerre, nul ne s’est préoccupé du traumatisme des Polonais restés seuls au milieu de ce silence.”

 

«베트레제프스키는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폴란드에서 유대인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라고 네칸다-트레프카 가 지적하고 있다. «3년전에, 나는 폴란드의 한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 관광가이드에 따르면, 과거에 이 마을의 주민의 80%가 유대인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부재에 대해 상상해 보려고 애를 썼다 : 나는 아침에 일어나 우물물을 찾아 나섰다.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침묵이었다. 더 이상 누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쟁 이후, 폴란드 유대인의 고통에 대한 관심을 찾아볼 수 없는, 이 폴란드인들은 유대인의 비극에 대해 침묵하는 유일한 사람들이 아닐까»라고 네칸다-트레프카가 결론내리고 있다.




덧글

  • dunkbear 2010/02/16 20:35 # 답글

    폴란드인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헐헐...
  • 파리13구 2010/02/16 20:42 #

    독일 점령 지역에서 유대인에 대한 현지주민의 학살이 있었던 곳은

    비단 폴란드 뿐만 아니라,

    발트해 3국, 우크라이나 같은 곳에서도,

    반유대주의 학살극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독일당국 스스로, 너무 잔인한 사건이라 기록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합니다.
  • nighthammer 2010/02/16 21:52 # 답글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꽤나 반유대정서가 강한 동네였다죠.
    역설적으로 그지역에 유대인이 많았기 때문이라고도 들었습니다만.
  • 파리13구 2010/02/16 21:57 #

    절대다수의 폴란드 국민이 가톨릭 신자들이고,

    이들은 일부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예수님에게 수난을 안긴 책임이

    바로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주장에 많은 공감을 보냈다고 합니다.
  • LVP 2010/02/16 22:31 # 답글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도 약간 언급되는 내용이 나오는군요.

    하긴 아우슈비츠같은 주요 수용소가 폴란드에 세워진 게 우연은 아니라고 하던 후일담이...
  • 파리13구 2010/02/16 22:38 #

    반유대주의가 폴란드 민족정체성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 1408 2010/02/16 23:07 # 답글

    체크포스트 기능이 없어서 대신 댓글로 포인팅 합니다. 지우지 말아주세요.
  • 山田 2010/02/16 23:14 #

    음, 체크포스트 기능은 포스팅 하단의,

    ☆ # by 파리13구 | 2010/02/16 20:06 | Le monde | 트랙백 | 덧글(7)

    이 부분의 별 모양 아이콘을 누르면 가능한 것 아닌가요? 만약 별 모양 아이콘이 보이지 않는다면 브라우저 문제인지 의심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만...
  • 1408 2010/02/17 00:56 #

    아. 보입니다. 그냥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도 표시가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 지나갑니다 2010/02/16 23:08 # 삭제 답글

    잘 보았습니다 ..
  • 행인1 2010/02/16 23:13 # 답글

    그러고보니 강제수용소에서는 폴란드 죄수들이 유태인(+집시 등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었다는 수기가 종종 눈에 띄더군요.
  • 파리13구 2010/02/16 23:19 #

    아우슈비츠 나치 강제수용소 같은 곳에서 동료 수감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카포"라고 부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카포를 당당한 사람들은,
    독일계 형사범, 정치범 (사민당원,공산당원) 혹은 지적하신 것처럼 폴란계 수감자들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몇몇 독일계 형사범 출신 카포들의 잔혹성이 명성이 자자했다고 하는군요..
  • 마무리불패신화 2010/02/17 01:45 # 답글

    폴란드에서도 유태인이 탄압받았었군요..ㄷㄷ
  • искра 2010/02/18 00:39 # 답글

    폴란드가 워낙 유대인이 많았기 때문에 나치 침략 이전부터 반 유대 정서가 강했습니다. 심지어 제정 러시아 치하에서 폴란드 민족이 탄압받으면서도 반 유대 정서가 강했죠.
    나치 치하에서 약 600만의 폴란드인이 죽었는데, 이중 약 300만 정도가 유대인이었죠.
    그리고 폴란드인 자신들도 나치로부터 끔찍한 피해를 입었기에 유대인에게 무관심한 것도 이유가 될겁니다.
  • 파리13구 2010/02/18 00:42 #

    그렇군요...
  • 방랑자 2010/02/19 00:04 # 삭제 답글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서 나온 한 장면이 기억나네요.

    블라덱이 아우슈비츠에서 간신히 살아서 아내를 찾던중 살던 곳에서 알던 여성 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하길... 한 청년이 아우슈비츠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와서 예전 자신의 집에 돌아가니 폴란드인이 살고 있었고 쫓아내버렸다. 어떻게 할 지 몰라하다가 그날은 노숙했는데 다음날 폴란드인들이 그를 잡아가 목매달아버렸다.
  • 파리13구 2010/02/19 00:08 #

    네.. 이런 이야기들은 폴란드에서도 그랬고,

    유럽의 다른 점령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알고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생존해서, 고향에 돌아온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이웃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