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점령한 유일한 영국영토는? 영국령 채널제도... Le monde

채널 제도(Channel Islands)는 프랑스 노르망디 가까이에 있는 영국 해협의 섬들을 말한다.

주요 섬으로는 건지 섬 Guernsey 과 저지 섬 Jersey 이 있다.

<영국에 상륙한 독일군>

약간 희극적인 분위기의 사진이지만, 확실히 영국인들에게 웃긴 사진은 아니다.

채널제도는 1940년 7월부터 독일의 점령하로 들어갔으며,

사진속의 독일 병사와 영국 경찰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달리 어떨 도리가 있었을까?

당시의 독일점령군 규모를 고려해 보면, 어떤 저항도 불가능해 보인다.

저지 섬과 건지 섬은 독일군의 영국 상륙작전인, 이른바 <바다사자>작전의 출발기지로 이용될 예정이었지만,

이 작전은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독일의 점령 이전에 영국정부는 이 제도에서 미리 철수했다고 한다.

Le 15 juin 1940, le gouvernement britannique décida que les îles Anglo-Normandes n'avaient pas d'importance stratégique et ne seraient pas défendues. Londres avait pensé que la défense des îles mobiliserait plusieurs dizaines de milliers de soldats allemands qui, obligées de stationner sur les îles, ne seraient pas sur d'autres fronts plus stratégiques. Ainsi, et en dépit de la réticence du Premier Ministre Winston Churchill, le gouvernement britannique abandonna la plus ancienne Dépendance de la Couronne "sans avoir tiré le moindre coup de feu"[1]. L'occupation des îles Anglo-Normandes n'avait aucun autre but pour les Nazis que de celui d'une propagande quant à l'occupation d'un territoire britannique. Les "îles Anglo-Normandes [ont donc] été démilitarisées et déclarées comme… ville ouverte"[2].


1940년 6월 15일, 영국 정부는 채널 제도가 전력적 중요성이 없고, 따라서 방어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런던은 이 제도의 방어를 위해 수만 명의 병력을 낭비할 수 없었고, 보다 다른 전략적 요충지에 투입되어야 마땅하다고 보았다.

차라리 이 제도의 독일 점령으로, 수만의 독일군을 이 제도에서 발을 묶어 놓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같은 윈스턴 처칠의 계산하에, 영국정부는 가장 유서깊은 영국 왕실령의 이 제도를

총한번 쏘지않고 포기한 것이다.

이후 나치 독일의 채널 제도 점령은 대영제국 영토의 일부를 점령했다는 선전만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영국의 철수 이후, 채널제도는 무장해제가 되었도, 무방비 도시라 선언되었다.



라이프 제2차세계대전 시리즈 중, <영국본토 공방전>편을 보면,
독일의 채널제도 점령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940 6월말의 일요일 아침, 독일 무장병이 처음으로 건지도에 도착했다.

1대의 독일공군 비행기가 풀이 무성한 건지도의 한 비행장에 착륙했고, 권총을 소지한 독일병이 내렸다. 그때 갑자기 영국 공군기 3대가 폭음을 내면서 접근했고, 당황한 이 독일병은 비행기를 타고 도주했다. 잠시 후, 다른 독일 공군기가 착륙, 3명의 사나이가 내렸다. 이들 중 한 군인은, 아무런 소란없이, 영국 경찰에게 자신들이 이 섬을 접수할 것이라 통보했다.

 

이렇게 해서, 히틀러의 영국해협제도 점령이 개시되었다.

이 점령은 영국 본토 침공을 위한 사전작업 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점령한 영국영토는 이 제도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독일의 이 제도 점령은 지극히 부드럽고 정중한 것이었다고 한다. 독일의 육군부대는 공군의 점령통보 이후에, 선박으로 도착했다. 이 채널제도는 이미 히틀러의 수중에 들어간 프랑스에서 48Km 이내에 있었고, 한편 영국본토로부터는 128km나 떨어져 있어서, 영국정부는 이미 방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독일 점령 2주전에, 영국국왕 조지6세 명의로, 영국군이 군사적으로 철수 한다고 미리 주민들에게 통보한 바 있었다.


<건지도의 세인트 피터 포트 거리를 행진 중인 독일 군악대>


그렇다고, 이 점령이 섬주민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야간 통행금지, 금주령, 영화관에서 나치 선전영화 상영, 해안 방어시설 이나 방공시설의 건설 등이 주민들에게 불쾌감을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민들은 조심스럽게도 이들 독일점령 세력에게 적의를 표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 독일군은 엉뚱하게도 비둘기를 사육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를 내리게 된다. 그들은 주민들이 비둘기를 이용해서, 자신들에 관한 기밀을 영국본토로 보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독일은 이 제도가 영국본토 공격을 위한 좋은 기지가 될 것이 계산했으며, 이 섬들의 전술적 전략적 가치들을 과대 평가했다. 그 결과 독일은, 점령지역 방위에 필요한 병력규모를 넘어서는, 과도한 병력을 이 섬들에 주둔시켰다. 병사들은 따분한 업무에서 오는 지루함이라는 고통을 견디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이 채널제도는 1945년 5월 9일에 해방되었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10/02/04 13:26 # 답글

    하지만 지루한 대신 무사히 살아돌아갈 수 있었으니 저기 배치된 것도 복이었지 말입니다^^;;
  • 파리13구 2010/02/04 13:29 #

    네, 동부전선에 비교한다면 야... ^ ^
  • dunkbear 2010/02/04 13:48 # 답글

    저 섬들이 해방된 시기가 의외로 늦었네요... 흠.

    근데 저걸 보니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이 알류샨 열도 일부를 점령한 일이 생각나네요. ㅋ
  • 파리13구 2010/02/04 14:40 #

    날짜로 보면, 해방군이 군사작전해서 라기 보다는,
    나치 독일이 항복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방된 것으로 보입니다.
  • 슈타인호프 2010/02/04 17:16 #

    힘들여 탈환할 만큼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상징적인 가치를 제외하면 어떤 전략적인 중요성도 없는데, 애꿎은 영국 민간인들을 죽여가면서 되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 초효 2010/02/04 15:11 # 답글

    북극 근처의 섬에 주둔했다가 본국에서도 까먹어버리는 것보다는 낫네요.
  • 네비아찌 2010/02/05 09:51 # 답글

    니콜 키드먼 주연 영화 '디 아더스'가 이 채널 제도 독일군 점령 시기를 모티브로 하죠.
    채널 제도는 무려 '노르망디 공작령'이라 정말 유서깊은 영토인데, 저런 결정 내리기도 쉬운 건 아니었겠지요.
  • 파리13구 2010/02/05 09:57 #

    <디 아더스>가 배경이 그때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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