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히틀러 그리고 레니 리펜슈탈... Encyclopedie



손기정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육상선수이다.

그는 나치 치하 독일에서 열린,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마라톤 주자로 출전하여,

2시간 29 19.2초에 주파해 당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다지 영광스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손기정은 아돌프 히틀러와 악수한 적 있고,

독일의 여성감독 레니 리펜슈탈과 친분이 있는 유일한 한국사람이 아닐까 한다.

 

손기정과 히틀러의 만남에서 대해서는,

1976 1 23일 동아일보에서, 손기정 본인이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제목- 그때 그일들 - 히틀러 인상기 , 백림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히틀러를 만났을때, 총통의 나이는 48세였고,

33년 총리로 취임한 뒤, 독재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한 지 3년째 접어들던 해 였다고 한다.

 

손기정이 히틀러를 만난 날은, 마라톤에서 우승한 다음 날인 1936 8 10일 오후 3시경으로,

그는 일본인 통역관 타쿠라와 함께, 그의 축하인사를 받기위해 주경기장 응접실로 갔다는 것이다.

응집실에 도착한 뒤 20여명의 근위병이 도열한 사이를 지나니, 바로 거기에 히틀러가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손기정이 받은 인상이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왼쪽 소매에 나치 상징 마크가 박힌 훌륭한 제복을 입고 있는 히틀러가 말하길,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면서,

"위대한 청년입니다"

 

그의 손은 체격에 비해 컸고, 손기정의 손을 휘감아 쥐는 듯 했고,

독일 지도자가 웃을때, 마치 코밑 수엽도 웃는 것 같았다고 한다.

 

손기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 독일 국민의 성원때문입니다."라고 하자,

히틀러가 다시 웃으며, "조국으로 돌아가면 체육을 위해 많이 힘쓰라!"라고 하면서,

등을 툭툭 두르려 주며, 총총히 퇴장했다고 한다.

 

기사의 말미에, 손기정은

당시에 어떤 의미로든 20세기의 거물 정치인인 히틀러와 기념사진을 찍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오히려 안 찍은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히틀러가 당시 올림픽에서 4관왕을 차지만 미국의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와 악수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 보면, 그의 시각에 다른 유색인종인 손기정과 악수해 준 것은 장래의 독일,일본 동맹을 위한 사전포석이었을까? 역사가 이언 커쇼의 <히틀러>에 따르면, 제시 오언스와 같이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겠냐고 히틀러유겐트 지도자, 시라흐가 총통에게 묻자, 히틀러는 버럭 화를 내면서 엄청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는 전언이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손기정은 나치 치하의 독일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성감독인 레니 리펜슈탈과의 인연도 남달랐고 한다.

 




다음은 연합뉴스의 <타계한 레니 리펜슈탈과 손기정>이란 기사에 나오는 것이다.

 

히틀러와 악수를 나눈 손기정은 우승 3일 후 리펜슈탈의 대저택으로 초청받는 영광을 안는다. 그의 저택이 얼마나 웅장했던지 손기정은 회고담에서 "덕수궁과 같이 큰 규모였다"고 들려주었다. 리펜슈탈은 손기정에게 자신의 정원을 한 바퀴 돌 것을 주문했는데, 이 때 연출해 찍은 사진은 일부에서 실제 마라톤 장면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리펜슈탈이 왜 이처럼 손기정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을까. 리펜슈탈의 사진자료를 1천여 점 가량 갖고 있는 화가 강형구 씨는 손기정의 과묵함과 정열, 그리고 동양적 면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당시 올림픽은 독일과 미국 두 나라의 잔치판이었는데 일장기를 달고 나온 식민청년 손기정은 행사의 국제성을 높여주는 좋은 사례였다는 것이다.

 

리펜슈탈은 각별한 동양인 친구인 손기정의 역주장면을 그의 대표작 <민족의 제전>에 가장 많이 삽입(전체 3시간 분량 중 10여분 할애)시켰다. <민족의 제전>은 베를린 올림픽 공식기록영화로, 이렇게 아름답고 방대한 영화는 지금껏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 리펜슈탈은 1956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군인마라톤대회에서 20년 만에 손기정을 재회한 데 이어 1977년에는 일본TV에 나란히 출연해 베를린 올림픽을 회고했다.




덧글

  • 말코비치 2010/01/29 16:04 # 답글

    당시 손기정이 '일본 선수'였기 때문은 아닐지...
  • 노는 건달 2010/01/30 02:43 # 삭제 답글

    리펜슈탈과 손기정 선수가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민족의 제전>으로 표현하신 영화가 혹시 <올림피아드>인가요?

    참고로 리펜슈탈 전기가 4-5년 전에 한국에도 출판되었죠
    리펜슈탈은 몇년 전에 100세 정도 살다가 세상을 뜬 것으로 기억합니다
  • 파리13구 2010/01/30 08:08 #

    네, 올림피아드 입니다...
  • 비키 2011/02/28 12:52 # 삭제 답글

    미국흑인선수를 차별했다는 말은 과장된게 맞고요 당시 그 흑인선수는 그런 차별 못느꼈다고 후에 고백했다고 합니다. 미국대통령도 환영하지않았다고 하니 인종차별은 당시 미국이 더 심했을거 같네요. 확실한건 독일 히틀러는 우리가 역사를 배운데로 유태인살상 2차세계대전일으킨 장본인 이라는 점과는 다른부분이 많습니다.우리나라로 따지면 10년만에 최하위 국가를 경제부흥을 일으킨 박대통령같은 위치였죠
  • 잡담 2012/01/24 18:22 # 삭제 답글

    어윈 커쇼의 이야기는 과장된 감이 있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우승한 제시 오웬즈에게 기념 사진 액자를 선물로 주었죠.
    오언즈가 회상하길 히틀러는 날 홀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을 날 홀대했다 고 말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