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축복받지 못한,최초의 흑인 공화국.. Le monde



[아이티] 신의 저주가 아닌, 단순한 가난, 절망적인 가난 때문이다.

 

아이티의 불행은 어떤 의미로든 신의 재앙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이 불행은 식민지라는 무거운 과거의 산물이자, 여기에 국가의 부재가 더해진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르텅 지 보도

 

Pas maudits, juste pauvres, désespérément pauvres

Les malheurs d'Haïti ne relèvent pas d'une quelconque fatalité divine. Ils sont aussi le fruit d'un lourd passé colonial, auquel s'ajoute l'absence d'Etat.


15.01.2010 | Arnaud Robert | 
Le Temps


Depuis le séisme qui a frappé Haïti, le 12 janvier, le terme de "malédiction" est omniprésent dans les médias et les pensées. Il trahit l’impossibilité d’expliquer la récurrence des drames qui frappent cette moitié d’île. Si la logique des plaques tectoniques ne se justifie pas, celle de la faillite politique et économique d’une nation qui n’a réussi à anticiper aucune des catastrophes naturelles qu’elle a dû affronter peut se comprendre.

 

지난 1 12일에 자연재해가 아이티를 강타한 이래로, «저주 혹은 불행»이라는 단어가 언론과 사람들의 생각 속에 맴돌고 있다. 이는 섬의 절반에 발생한 재앙의 드라마들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이번 사건이 지질학적인 지각판의 운동의 논리로 정당화될 수 없다면, 현재 아이티가 직면하고 있는 자연재해를 전혀 예견해 내지 못했던, 한 국가의 정치 경제적 실패가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데 더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Dans un e-mail qu’elle a adressé au Temps, l’ancienne Première ministre d’Haïti, Michèle Pierre-Louis, remplacée en septembre après une année en fonction, s’agace depuis Port-au-Prince de la vision fataliste qu’on se fait du destin d’Haïti : "Affirmer qu’Haïti est maudit sous-entend que nous serions en train de payer pour des fautes commises. En réalité, ce pays a été mal géré au cours des cinquante dernières années : mauvaise gestion du territoire, constructions anarchiques, crise de la paysannerie et refuge dans des bidonvilles infâmes, élites dépourvues de vision globale."

 

지난 9월 재임 1년만에 경질된, 아이티의 전직 총리, 미셸 피에르-루이는, <르 텅> 지에 보낸 이메일에서, 아이티의 운명을 결정한,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지배하고 있는 파괴적인 세계관을 비난하고 있다. «아이티는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과거의 오류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나라는 지난 50년 동안 잘못 운영되어 왔다 : 잘못된 국토 개발, 무계획적인 건설들, 농업 위기 그리고 비참한 도시빈민가들로의 농민들의 이주, 세계적 시각이 결여된 국가지도층들»

 

Pour beaucoup, l’histoire haïtienne se confond avec celle des Caraïbes. Minuscules lambeaux de terre sur l’Atlantique, débarrassés de leur population amérindienne pour développer au profit des puissances coloniales un système de plantations que des esclaves africains cultivent. Haïti – le fait est central dans son histoire – ne se perçoit pas ainsi. Pour l’écrivain guadeloupéen Alain Foix, "on veut réduire aujourd’hui les Haïtiens à un peuple habitué du malheur. En Toussaint Louverture, héros de l’indépendance haïtienne, je vois un précurseur d’Obama, qui voulait intégrer les anciens colons blancs."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티의 역사는 카리브해 지역의 역사와 혼동되고 있다. 물론 카리브해의 역사는 대서양에 존재하는 작은 땅덩어리로, 식민지 열강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메리카인디언들을 추방하고, 아프리카 노예들을 데려와서, 플렌테이션 제도를 확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티 역사에서 핵심적인 사실은 이런 식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달루프의 작가인 알랭 프와에 따르자면, «오늘날 세계는, 아이티 사람들을 불행에 익숙해진 한 국민들로 폄하하고자 한다. 하지만, «흑인 스파르타쿠스»라 불렸던, 아이티 독립의 영웅인 투생 루베르튀르 에게서, 나는 오바마의 정치적 뿌리를 발견하고 있고, 그는 과거의 백인 식민주의자들을 사회에 통합시키기를 원한 바 있다

 

Première république noire de l’histoire, fondée en 1804, Haïti est singulier à tout point de vue. Le Panthéon national croule sous des figures qui sont devenues pionnières dans la pensée africaine et afro-américaine. Toussaint Louverture, bien entendu, mort en exil à Fort-de-Joux avant d’avoir vu l’indépendance. Mais aussi Jean-Jacques Dessalines, premier dirigeant libre de l’île, et une pluie d’autres qui ont baptisé la moitié des rues, des aéroports et des places publiques en Haïti. Seule révolution noire qui a abouti à l’expulsion du colon, l’indépendance haïtienne a finalement été monnayée par le colon français ; Haïti a acheté sa liberté au prix d'une dette colossale ; cela définit pour beaucoup l’origine du drame haïtien.

 

이미 1804년에 역사상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 성립된, 아이티는 모든 점에서 다른 카리브해 지역의 역사와 대비된다. 아이티의 국가적 위인들을 모신 사당에는 아프리카 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상의 모태가 된 사상가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투생 루베르튀르가 있고, 그는 독립을 보지 못하고, 망명 중인 포르드주 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자유를 찾은 이 섬을 통치한 최초의 지도자인 장-자크 데사린이 있었고, 다른 지도자들도 많았으며, 이들의 이름은 오늘날의 아이티의 많은 길거리, 공항들, 공공광장들의 이름들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식민주의자들을 추방한 유일한 흑인 혁명이었던, 아이티 독립은 결국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의 희생을 초래한 것이다. 아이티는 식민지 투자자금을 희생하여 , 자신의 자유를 산 것이었다 ;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아이티 드라마의 기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Pour l’historien Christophe Wargny, dont l’ouvrage Haïti n’existe pas [éd. Autrement, 2004] a alimenté la polémique de part et d’autre de l’Atlantique, il existe en effet un certain nombre de causes extérieures à l’échec socio-économique d’Haïti : "En 1804, les Haïtiens ont commis l’inacceptable aux yeux de l’Occident. Ils se sont affranchis. La France, l’Angleterre et les Etats-Unis ont tout fait pour éliminer de l’histoire cette nation de "négrillons francophones". A bien des égards, ils ont réussi." Pressions économiques de l’ancien colon, longue occupation américaine dans la première partie du XXe siècle : le sentiment s’établit peu à peu en Haïti d’une nation qui se construit malgré ou, plutôt, contre le reste du monde. "Mais il existe également des causes endogènes. L’appropriation des terres par l’Etat, notamment. Et l’absence de registre foncier, qui participe aujourd’hui du désastre. Avec l’émigration rurale massive, les gens ont conquis l’espace disponible en dépit du bon sens."

 

<아이티는 존재하지 않는다,2004>의 저자인, 역사학자 크리스토프 워그니가 이 책을 통해 대서양의 양편에서 논쟁을 유발한 적이 있다. 사실, 아이티의 사회-경제적 실패에는 몇가지 외부적인 요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1804, 아이티인들은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용납될 수 없는 짓들을 저지른 것이다. 그들은 어떤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다. 프랑스,영국,미국은 이 프랑스계 흑인들의 국가를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이런 시각에서, 이들 서양 국가들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구 식민주의자들의 경제 제재, 20세기 초반 미국의 장기간 점령 등이 바로 그 예이다 : 이런 역사는 아이티에서 이 나라가 전세계의 의지에 반해서 건설된 국가라는 의식을 점점 강화시켜 왔다. «하지만, 아이티의 불행에는, 외부적인 것 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요인들도 존재한다. 특히 국가에 의한 토지독점. 그리고 토지소유와 토지등기 제도의 부재가 오늘날의 재앙을 부추 킨 측면이 있다. 과도한 농촌인구의 유입으로, 사람들은 위험이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이용이 가능한 모든 공간들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Deux cents ans après son indépendance, célébrée en 2004 dans les émeutes contre le président Jean-Bertrand Aristide, Haïti reste profondément marqué par son héritage colonial. Une population constituée à 90 % de Noirs et une élite mulâtre qui possède une grande partie des terres. Alors que dans le pays voisin, la République dominicaine, le métissage est la règle. Spécialiste de l’île et du contraste entre les deux pays, le géographe Jean-Marie Théodat (2) parle de deux Etats en miroir : "En République dominicaine, il y a un arsenal de lois, une armée, une police, une administration qui existent sans discontinuité depuis l’indépendance. En Haïti, ce n’est pas le cas. Aujourd’hui, les vraies autorités – la mission onusienne – sont des autorités d’occupation." Jean-Marie Théodat affirme que les quartiers effondrés de Port-au-Prince ont été construits comme des "cimetières" : dépourvus de voie d’accès, dans des zones non constructibles, affranchis de toute norme. Les dégâts que l’on découvre ces jours sont aussi l’héritage du désengagement politique, des dictatures duvaliéristes et de l’échec d’Aristide. La déforestation elle-même, qui reste sans doute le premier défi écologique d’Haïti et qui aggrave les conséquences des cyclones, "Il ne s’agit peut-être pas de reconstruire Port-au-Prince", affirme Christophe Wargny, "mais de construire enfin un pays qui ne doit pas exister que par sa capacité à se relever."


지난 2004년 독립 200주년을 기념한 아이티에서는, 당시 대통령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에 반대하는 폭동이 발생했고, 이는 아이티가 아직도 식민주의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아이티 인구의 90%는 흑인이지만, 토지의 대부분은 흑백혼혈 아이티인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인접 국가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혼혈인들이 인구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가 가능하다. 이 섬에 대한 전문학자이자, 이 두 나라의 비교에 정통한, 지리학자 장-마리 테오다 는 서로 대조되는 두 국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법률체계, 군대, 경찰, 행정이 독립 이래 연속성을 유지한 채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아이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아이티의 진정한 권력은 점령 세력에게 있다. – 유엔이 파견한 사람들 이다.- 이 지리학자에 따르면, 이번에 초토화된 포르토프랭스 지역은 마치 공동묘지처럼 건설된 곳이라 주장하고 있다 : 도로연결망이 부재하고, 어떤 기준에서 봐도 건설이 부적합 곳에 들어선 도시지역이라는 것이다. 지난 몇 일 동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폐허들은 또한 정치적 무능 과 독재 그리고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실패의 결과들이다. 뿐만 아니라, 산림파괴도 아이티 최대의 환경 파괴이고,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를 배가시키고 있다. 크리스토프 워그니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리고 있다. «아마도 포르토프랭스를 재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드러난 바와 같이 능력의 결여로 인해, 존재해서는 안되었던, 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문제이다








덧글

  • 말코비치 2010/01/18 12:36 # 답글

    아이티 사태를 단순히 '자연재해'로 보는 것만큼이나 무지한 설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지진이 일본에 났을 때 사상자는 100단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이러한 점을 짚어줘야 겠지만 국내 언론사들은 글쎄요...
  • 파리13구 2010/01/18 12:43 #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이티 지진으로 어떤 확신을 느끼는 것과

    차별성이 없다고 봅니다...
  • 아인베르츠 2010/01/18 13:36 # 답글

    오늘 날 아프리카의 난장판이 뜬금없는 일이 아니듯.....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아이티도 언제든지 박살이 날 것같은 장소였다고 생각합니다.
  • 행인1 2010/01/18 13:49 # 답글

    아이티 삼림파괴가 다른 재해의 피해를 더 크게만들고 있었군요.
  • rumic71 2010/01/18 14:34 # 답글

    파파 독과 베이비 독을 무시하면 아이티의 흑역사가 부정되는 것이지요.
  • 키린 2010/01/19 14:28 # 답글

    아이티와 도미니카를 일찍 비교했던 "문명의 붕괴"에서도 잘 나타나있죠.
  • 이철수 2011/06/04 05:06 # 삭제 답글

    의돠 무엇인지요?

    서구인들에 대한 비판인지, 무능한 아이티에 대한 저주인지........시작과 끝이 헷갈리는 이중성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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