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의 독불화해의 동기에는 영미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Encyclopedie

위의 사진은 드골 과 아데나워 다.
이것과 함께, 독불화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엘리제 조약은, 1963년 1월 22일에 체결된 것으로 , 독일 프랑스 우호조약이라고도 한다.

이 조약의 의의는, 19세기 이래로 철천지원수 였던 , 독일 프랑스 양국이

상호 우호라는 관계의 새로운 역사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외교사에서의 사건이었다.


샤를 드골의 개인사를 보면,

그에게 독일 이상의 역사적 원수는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그가 독불협력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것은 어떠한 배경하에서 였을까?


물론, 프랑스가 라인 강 너머의 옛 적과의 제휴를 통해, 영미의 압력에 취약한 자국의 위치를 보강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생각이 아니였다.

이미 1926년, 프랑스 외교관, 자크 세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유럽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대적하기 보다는 협력하는 것이 더 낫다.

프랑스 와 독일이 화해하면 우리는 그만큼 영미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드골의 시각에서 1963년 프랑스의 상황은 암울했다.

1962년 9월, 영원한 프랑스 영토라고 생각되던 알제리가 독립을 했고,

프랑스 제국은 그 역사적 종말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또한 영국과 미국은 항상 프랑스에게 매정했다.

1962년 12월, 영국의 해럴드 맥밀런 과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바하마 제도의 나소에서 만나,

미국이 영국에게, 잠수함에 탑재하는 폴라리스 핵미사일을 제공하는 협정에 조인했다.

드골은 이 소식에 격노했다. 이런 영미간의 합의가 프랑스와의 사전 협의없이

프랑스의 등뒤에서 진행되었고,

이후 프랑스는 미국과 논의한번 해보지 못하고, 유사한 조건으로 이 미사일을 제공받음으로써 모욕까지 당했다.


영국에 대한 샤를 드골의 기본적인 방침은 복잡미묘한 것이었다.

드골은 영국이 유럽 과 미국 사이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으려 한다고 추정하기는 했지만,

만약 런던이 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유럽이라기 보다는 대서양 반대편의 국가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정확했다. 


1962년 12월의 외교 굴욕으로 격분한,이 프랑스 대통령이 1963년 1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프랑스는 영국의 유럽공동체 가입신청을 거부한다고 발표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즉, 영국이 미국의 위성 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유럽 국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영미세계에 대한 견제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

같은 해 1월 22일, 독일 프랑스 우호 조약이었던 것이다. 

이는 프랑스가 영미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독일과 협력한다는 것이고,

그 무대는 유럽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드골의 입장에서, 독불화해의 출발은 유럽에서의 영미권에 대한 복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식민지도 사라지고, 영미는 항상 프랑스를 엿먹이는 상황에서,

위대한 프랑스를 실현할 수 있는 무대는 유럽이었고,

그것은 독일과의 새로운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 것이, 독불협력을 추진한 드골의 기본입장이었던 것이다.


덧글

  • 행인1 2010/01/05 19:51 # 답글

    독일은 싫지만 영국과 미국은 더더욱 싫었던 거군요.
  • 파리13구 2010/01/05 19:57 #

    특히나, 드골이 자유프랑스 운동을 하면서, 런던에서 식객 생활을 할때,

    처칠과 특히 루스벨트 로부터 받은 냉대 와 모욕을 생각하면,

    저도 약간은 드골의 분노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 ^
  • 들꽃향기 2010/01/05 21:41 # 답글

    사실 1860년대 콥던-슈발리에 협정의 채결 이후로 프랑스의 외교와 경제가 영국에게 종속된다고 생각해 온 이들에 의해서 독일과의 타협은 어느 정도 고려되던 면이 있었습니다.

    1890년대만 해도 프랑스의 외무상 델카세는 독일과 협력한다면 영국에 협력하지 않고 중동 및 식민지에서의 입지를 확립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고,
    실제로 당시의 사회당 내각은 이러한 독일과의 협력문제의 가장 큰 장애였던 알자스-로렌 문제에 대해서 "독일의 주권 하의 자치령을 승인'한다면 독일과 협력할 수 있다는 복안을 내놓기도 했었죠.

    이런 것들을 보면 확실히 드골의 '더부살이 시절 감정'은 대독일문제에 있어서는 국가에도 도움이 되는 득이 되었다고 보고 싶네요.

  • 파리13구 2010/01/05 21:46 #

    좋은 지적에 감사 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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